본문 : 여호수아(Joshua) 4:15 - 4:24
15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6 증거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령하여 요단에서 올라오게 하라 하신지라
17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요단에서 올라오라 하매
18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가운데에서 나오며 그 발바닥으로 육지를 밟는 동시에 요단 물이 본 곳으로 도로 흘러서 전과 같이 언덕에 넘쳤더라
19 첫째 달 십일에 백성이 요단에서 올라와 여리고 동쪽 경계 길갈에 진 치매
20 여호수아가 요단에서 가져온 그 열두 돌을 길갈에 세우고
21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이 그들의 아버지에게 묻기를 이 돌들은 무슨 뜻이니이까 하거든
22 너희는 너희의 자손들에게 알게 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이 요단을 건넜음이라
23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너희 앞에서 마르게 하사 너희를 건너게 하신 것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
24 이는 땅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며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
여호수아서 4장을 읽다 보면 조금 헷갈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12돌에 관한 말씀입니다.
4장 1절부터 8절까지 읽으면 선택된 12명이 요단강에 가서 12돌을 선택해서 가지고 나오는 명령이 있습니다. 5절의 말씀을 새번역으로 읽으면 좀더 그 장면이 명확합니다. “"주 당신들 하나님의 언약궤 앞을 지나 요단 강 가운데까지 들어가서, 이스라엘 자손의 지파 수대로 돌 하나씩을 각자의 어깨에 메고 오십시오.” 그래서 그 돌을 그들이 머무는 곳에 가져다가 그곳에 내려 놓게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그런데 9절을 보면 여호수아는 또 다른 명령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새번역으로 읽어 드리겠습니다. “여호수아는 요단 강 가운데, 언약궤를 메었던 제사장들의 발이 머물렀던 곳에 다른 열두 개의 돌을 세웠다. (그 돌들이 오늘까지 거기에 있다.)”고 말씀합니다. 즉 요단강에서 가져 온 열두돌은 그들이 거처 앞에 내려 놓고, 또 다른 돌 12개를 제사장들이 서 있는 곳에 세운 것입니다. 그러면 거처에 가져다 놓은 12돌은 어디에 세웠냐 하면 오늘 본문 19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19 백성이 첫째 달 열흘에 요단 강을 건너 여리고 동쪽 변두리 길갈에 진을 쳤다. 20 여호수아는 요단 강에서 가져 온 돌 열두 개를 길갈에 세우고” 여호수아는 요단강에서 가져 온 12돌을 길갈에 세우게 됩니다.
이 12돌을 길갈에 세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제 묵상에 말씀 드렸듯이 영원토록 기념물이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주님의 언약궤 앞에서 요단 강 물이 끊겼다는 것과, 요단 강을 지날 때에 요단 강 물이 끊겨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기념물이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저는 이 돌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봤습니다. 그들은 장정만 60만 명이 되는 민족입니다. 민족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요단강을 믿음으로 건넜는데, 그들이 세운 것은 한 사람의 어깨에 맬 수 있는 돌 12개입니다. 한 사람이 멜 수 있는 크기면 아무리 커도 40키로 이상은 매기 어렵습니다. 그런 돌 12개을 세워 봐야..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을 것입니다. 고대의 왕들은 자신들을 기념하기 위해서 엄청난 일들을 합니다. 애굽에서는 피라미드를 쌓습니다. 이란과 이라크에서는 지구라트를 쌓았습니다. 불가사의한 일이라고 말할 정도로 엄청난 무덤을 만드는 것이 인간의 욕망인데 하나님은 한 사람의 어깨에 맬 수 있는 돌 12개를 쌓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그 돌을 잘 보이지도 않는 요단강 물에 쌓으라고 했습니다.
요단강 물에 돌을 쌓으라는 여호수아의 명령에 대해 존 칼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기념비는 비록 보이지는 않을 지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 가운데 세워진 것과 같은 효과를 거두게 되었다. 저들이 요단강을 볼 때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 안에 세워져있을 기념비를 마음의 눈으로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간혹 건기 때 수심이 낮아져 그 기념비의 꼭대기가 보이게 되면 그 효과를 배가 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쌓으라고 한 돌 탑의 목적은 힘을 과시하거나, 지혜를 뽑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고 그들 스스로 하나님이 하신 일을 말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만일 어떤 건축물로 하나님의 위대함을 표현하려 했다면 그 시도 자체가 어리석은 일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억하기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증거하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어깨에 짊어질 수 있는 12돌을 세우기 원하신 것입니다.
24절에 보면 하나님은 이 돌들을 세우는 목적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한글 성경에는 이 표현이 명확하게 들어나지 않는데, 히브리 성경을 보면 “레마안” 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영어로 “in order to” ~ 하기 위하여라는 목적을 나타내는 부사입니다. 24에는 ~ 하기 위하여라는 부사가 두번 나오는데 첫번째는 알게 하기 위하여… 이고 둘째는 경외하게 하기 위하여입니다.
하나님이 돌을 세우게 하신 궁극적인 목적은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손은 강하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기 원하십니다.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은 허접한 이방 신이 아니라 우리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분임을 알아주기 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경외하기를 원하십니다. 이 말은 하나님을 무시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기 원하셨고,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원하셔서 12돌을 세워 그 돌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기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금은 보화를 원하시나요? 화려한 예배를 원하시나요? 웅장한 성전을 원하시나요? 알아주기 원하셨습니다. 아는 척이 아니라 그분이 나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알기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최소한 무시하지 않기 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저는 무시 하지 않는다는 것과 비슷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무시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고 있음을 알아 주시기 바랍니다. 무시하지 말고 살기를 기도합니다.
■ 누가복음 3장을 읽으십시오. 이전에 한 것처럼 사건과 시간 및 장소를 언급하는 구절들에 표시를 하십시오.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생애에 관한 역사적이고 전기적인 기록입니다. 그 당시의 시대 상황을 떠올려 보십시오. 빌라도의 유대 통치 기간을 생각해 보십시오.
■ 본장에서 요한과 예수님에 관해 배운 바를 아래 적어 보십시오.
이번 주일 설교는 누가복음 3장에 나오는 침례요한의 외침 "회개의 열매를 맺으라"는 말씀으로 은혜를 나눕니다.
거룩한 주일 예배를 기대하며 누가복음을 읽어보시고 오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