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20장 1-26절
1 일곱째 해 다섯째 달 열째 날에 이스라엘 장로 여러 사람이 여호와께 물으려고 와서 내 앞에 앉으니
2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3 인자야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말하여 이르라 주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느니라 너희가 내게 물으려고 왔느냐 내가 나의 목숨을 걸고 맹세하거니와 너희가 내게 묻기를 내가 용납하지 아니하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4 인자야 네가 그들을 심판하려느냐 네가 그들을 심판하려느냐 너는 그들에게 그들의 조상들의 가증한 일을 알게 하여
5 이르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옛날에 내가 이스라엘을 택하고 야곱 집의 후예를 향하여 내 손을 들어 맹세하고 애굽 땅에서 그들에게 나타나 맹세하여 이르기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하였노라
6 그 날에 내가 내 손을 들어 그들에게 맹세하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어 그들을 위하여 찾아 두었던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모든 땅 중의 아름다운 곳에 이르게 하리라 하고
7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눈을 끄는 바 가증한 것을 각기 버리고 애굽의 우상들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니라 하였으나
8 그들이 내게 반역하여 내 말을 즐겨 듣지 아니하고 그들의 눈을 끄는 바 가증한 것을 각기 버리지 아니하며 애굽의 우상들을 떠나지 아니하므로 내가 말하기를 내가 애굽 땅에서 그들에게 나의 분노를 쏟으며 그들에게 진노를 이루리라 하였노라
9 그러나 내가 그들이 거주하는 이방인의 눈 앞에서 그들에게 나타나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이는 내 이름을 위함이라 내 이름을 그 이방인의 눈 앞에서 더럽히지 아니하려고 행하였음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애굽 땅에서 나와서 광야에 이르게 하고
11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삶을 얻을 내 율례를 주며 내 규례를 알게 하였고
12 또 내가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고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노라
13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광야에서 내게 반역하여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삶을 얻을 나의 율례를 준행하지 아니하며 나의 규례를 멸시하였고 나의 안식일을 크게 더럽혔으므로 내가 이르기를 내가 내 분노를 광야에서 그들에게 쏟아 멸하리라 하였으나
14 내가 내 이름을 위하여 달리 행하였었나니 내가 그들을 인도하여 내는 것을 본 나라들 앞에서 내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려 하였음이로라
15 또 내가 내 손을 들어 광야에서 그들에게 맹세하기를 내가 그들에게 허락한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모든 땅 중의 아름다운 곳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지 아니하리라 한 것은
16 그들이 마음으로 우상을 따라 나의 규례를 업신여기며 나의 율례를 행하지 아니하며 나의 안식일을 더럽혔음이라
17 그러나 내가 그들을 아껴서 광야에서 멸하여 아주 없이하지 아니하였었노라
18 내가 광야에서 그들의 자손에게 이르기를 너희 조상들의 율례를 따르지 말며 그 규례를 지키지 말며 그 우상들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19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너희는 나의 율례를 따르며 나의 규례를 지켜 행하고
20 또 나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할지어다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표징이 되어 내가 여호와 너희 하나님인 줄을 너희가 알게 하리라 하였노라
21 그러나 그들의 자손이 내게 반역하여 사람이 지켜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삶을 얻을 나의 율례를 따르지 아니하며 나의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였고 나의 안식일을 더럽힌지라 이에 내가 이르기를 내가 광야에서 그들에게 내 분노를 쏟으며 그들에게 내 진노를 이루리라 하였으나
22 내가 내 이름을 위하여 내 손을 막아 달리 행하였나니 내가 그들을 인도하여 내는 것을 본 여러 나라 앞에서 내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려 하였음이로라
24 이는 그들이 나의 규례를 행하지 아니하며 나의 율례를 멸시하며 내 안식일을 더럽히고 눈으로 그들의 조상들의 우상들을 사모함이며
25 또 내가 그들에게 선하지 못한 율례와 능히 지키지 못할 규례를 주었고
26 그들이 장자를 다 화제로 드리는 그 예물로 내가 그들을 더럽혔음은 그들을 멸망하게 하여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하였음이라
본문을 1절부터 읽으면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이유를 말씀합니다.
먼저는 그들의 조상들이 가증한 일을 했다고 말씀합니다. 그들의 조상은 애굽에서 노예 생활 하면서 애굽 사람들이 섬기는 가증한 우상들과 함께 생활 했는데, 하나님은 그 가증한 것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 그들을 출애굽시켰습니다. 애굽은 각종 동물들과 자연을 신으로 섬겼습니다. 투구풍뎅이, 메뚜기를 지켜주는 세라피스 등을 신으로 섬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에서 가증스러운 일들을 자행하게 됩니다. 8절에 보면 가증한 것을 각기 버리지 아니하며 애굽의 우상들을 떠나지 아니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하나님이 지키라고 명령하신 율례와 규례들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 중에서 하나님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해서 강조해서 말씀합니다. 12절에 보면 하나님은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으로 삼으셨다고 한 후에 13절에 나의 안식일을 크게 더럽혔다고 말씀하시고, 16절과 21절에도 안식일을 더럽혔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왜 안식일을 강조해서 말씀하셨을까요? 다른 계명도 많은 데 왜 안식일을 강조하셨을까요?
근본적으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포함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믿음의 표현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안식일을 강조하셨습니다. 나를 창조하신 분이 7일째 일을 그치시며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피조물로써 당연히 안식일을 자발적으로 기쁨으로 지켜야 할 것인데,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에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이 세상을 내 힘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아래 살겠다는 믿음의 표현이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사람은 욕심이 많아서 7일째도 일하고 싶어 합니다. 자신의 힘을 의지하여 열심히 일해서 내 힘으로 살아가고 싶어합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1/7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부분이 전혀 아깝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루를 보내겠다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안식을 지킬 때 하나님은 그들을 지켜 주셨습니다. 안식일을 지켜서 망했다는 분들을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안식일을 통해서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백성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은 것을 많이 강조하셨고, 에스라 학자 이후에 유대인들은 철저히 안식일을 지키려 노력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문자적으로 지키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배고파서 밀 밭에서 손으로 밀을 까먹던 제자들을 비판했고, 병자를 고치는 예수님을 일한다고 트집 잡고 고소한 것입니다. 문자적인 율법 주의는 발전하여 지금 이스라엘에 가면 웃지 못할 일들이 있다고 합니다. 안식일은 금요일 해 질 때부터 시작합니다. 그런데 안식일이 시작되면 촛불도 못 켜기 때문에 해가 지기 전에 촛불을 켜 놓는데, 깜빡 잊고 촛불을 안켜놨으면 이방인들에게 촛불을 켜달라고 부탁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안식일이 시작되면 운전을 해서 안되기 때문에 길거리에 차를 놓고 가는 경우도 있다고 하고, 안식일에는 엘리베이터가 모든 층에 서게 만들어 놔서 가고 싶은 층을 누르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물론 이런 행위를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식일에 참된 안식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주일을 지킵니다. 하지만 안식일의 정신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안식일을 지키는 유대인처럼 율법에 얽매여 주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참된 정신을 가지고 지켜야 합니다. 주일은 안식일의 신학적인 정신이 계승된 것입니다. 칼빈은 안식일 제도의 각종 규정들은 예수님이 오신 후에 폐지가 되었지만 안식일이 가지고 있는 신학적인 정신들은 반드시 계승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칼빈이 강조하는 세가지 정신이 있습니다.
첫째는 안식일이 앞으로 올 영원한 안식에 대한 표로 삼은 것이기 때문에 주일도 율법적으로 얽매어 무엇을 못한다는 스트레스를 받는 날이 아니라 종말에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 그곳에서 하나님의 온전한 통치를 받으며 한없이 하나님의 복락을 누리며 즐거워하는 날을 미리 맛보기로 보여줄 것이 주일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둘째, 하나님은 믿음의 백성이 정해진 날에 모여 하나님의 법도를 깨닫고 예배하기 원하셨는데, 이 신학적인 정신은 계승되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 이유에 대해서 칼빈은 우리의 육체의 연약함 때문이라고 말했다. 만약에 제약이 없이 내버려 두면 하루라도 더 일하려 하고, 그런 연약성 때문에 공동체 전체를 묶어서 집중적으로 말씀을 교육받고 집중적으로 하나님을 경배함으로 영혼과 정신을 향함 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율법의 신학적인 정신이 주일에 계승되었다고 본 것입니다.
셋째, 사람들을 노동으로부터 쉬게 하시게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노동에서 쉬어야지 두 가지 목적이 성취됩니다. 일반적인 차원에서는 그렇게 휴식을 함으로 재창조가 가능해지도록 하신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 영적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노동의 의미에 억매이지 않고 자기의 신앙심을 고양시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칼빈은 구약에서 영적인 표로 바라보고 그림자로 제사했던 것들은 예수 그리스도에서 성취가 되어서 그것을 조항적인 규정으로 지킬 필요가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 주일은 미래에 이루어질 천국을 미리 맛보는 것이기에 주일에 우리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 천국의 복락을 누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유대인들처럼 율법적으로 주일을 지킬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정신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 기쁨을 누리고, 함께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쉼을 통해서 재 충전의 시간을 가짐으로 안식을 더렵히지 않고, 거룩하게 지켜 하나님 백성으로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