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6:17 - 26:35
17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유월절 음식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18 이르시되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이 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시니
19 제자들이 예수께서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였더라
20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21 그들이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22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
23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24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25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26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9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30 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 산으로 나아가니라
31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32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33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35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바로 직전에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식사 하시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유월절에는 특별한 음식을 먹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월절에 어린양의 정강이 뼈, 삶은 달걀, 쓴 나물, 양상추, 소금물, 하로셋 등 총 여섯 가지의 특별한 음식들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무교병을 먹습니다.
이렇게 유월절 음식을 함께 나누는 자리에서 예수님을 폭탄을 터뜨리십니다.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만일 여러분이 예수님의 제자였다면 여러분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아마도 여러분은 예수님께 화를 내면서 "예수님 농담도 잘하십니다. 우리가 왜 예수님을 팝니까? 예수님 아무리 우리가 못 미더워도 그런 말씀하시면 안됩니다." 라고 했을 것입니다.그런데, 제자들은 근심하며 각자 예수님께 가서 물어봅니다. "주님 저는 아니지요?" 그들은 무엇을 근심했을까요? 혹시 자신이 예수님을 팔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요? 절대로 팔지 않을 확신이 있다면 그들은 근심할 것이 아니라 화를 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그럴 수 있기 때문에 근심하며 묻습니다. 나는 아니지요? 제자들은 확신이 없었습니다. 나는 아닙니다! 라고 말하기 보다는 12명 가운데 나는 아니지요? 라는 소극적인 물음을 할 뿐입니다.
제자들의 이 말을 읽으며 내 자신을 돌아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돈 받고 파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기독교가 힘있는 세상에 살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을 이용하기 위해서 사는 경우는 있어도 예수님을 팔지는 않습니다. 우리에게 더 이득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헌신을 요구하실 때, 하나님이 정직한 말을 요구하실 때, 하나님이 손해 보는 일을 요구하실 때, 하나님이 내 생각과 다른 일을 요구하실 때.. 네, 주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그일을 감당하겠습니다. 라며 주님과 끝까지 할지.. 주님 저는 아니지요? 저는 그럴 일이 없지요? 라며 은근히 말꼬리를 흐리며 자신없는 모습으로 있을지 자신을 돌이켜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는 두 명의 제자 이름이 나옵니다. 두 제자를 통해서 우리의 모습이 어떠해야 할지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한명은 가룟인 유다입니다. 가룟 유다는 이미 예수님을 은 30에 팔기로 계약했습니다. 15절에 보면 예수님을 넘겨 주는 조건으로 은 삼십을 달아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뻔뻔했습니다. 예수님이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고 까지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여러분과 저 같으면 아이고 주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라고 말하며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변명이라도 할 텐데… 다른 제자들과 같이 “나는 아니지요?” 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최소한 뻔뻔하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 장면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늦었지만 뉘우치는 것입니다. 늦었지만 그래도 회개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예수님을 넘겨주고 맙니다.
또 한명은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성격답게 예수님을 찾아가 큰 소리로 말합니다.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과 달리 예수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큰 소리로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에게 닭 울기 전에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들은 베드로를 비롯한 다른 제자들은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
그러나 결과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베드로는 예수님이 대 제사장 관저 뜰에서 심문 받으실 때 그 문 밖에서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번 부인합니다.
형태는 달라도 결과적으로 베드로도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아무리 베드로의 상황을 좋게 본다 할지라도 그를 이해하고 싶어도 베드로도 예수님을 배반한 것은 마찬가지 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달랐습니다. 베드로는 최소한 자신이 배반한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아니지요? 라는 뻔뻔한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상황에서 아무도 없기 때문에 그냥 모른척 넘어갈 수 있었지만, 예수님의 말이 생각나 심히 통곡하며 회개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우리는 제자들처럼 약합니다. 주는 나는 아니지요? 라고 말하며 자신 없는 모습을 보일 수 있습니다. 혹은 베드로처럼 나는 절대로 안합니다. 라고 말한 후에 배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나의 연약함을 알게 되었을 때, 나의 부족함을 깨닫게 되었을 때 어떤 모습으로 주앞에 설 것인가? 생각하고 고민해야 합니다.
먼저 중요한 것은 “나는 아니지요?” 하면서 책임을 회피하지 맙시다. “나는 아니지요?” 하면서 잘못을 전가하지 맙시다. “나는 아니지요?” 하면서 한걸음 뒤로 물러나지 맙시다.
“나는 아니지요?” 하면서 다른 동료를 핀잔하지 맙시다. “나는 아니지요?” 하면서 따를 수 없음을 정당화 하지 맙시다. “나는 아니지요?” 하면서 서로를 믿지 못하는 마음을 감추려 하지 맙시다.
차라리 내가 확신하고 있다면 묵묵히 길을 가면서 일을 합시다. 차라리 “바로 나입니다.” 하면서 잘못을 고백하고 되돌릴 수 있도록 회개하며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Who's your One?
Day 21
Give thanks to the Lord, for he is good; his faithful love endures forever.
1 CHRONICLES 16:34, CSB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역대상 16:34)
Father, I give thanks to You for Your goodness in my life. I know Your faithful love endures forever. You have never abandoned me, and You continue to demonstrate grace in my life, though I’m so prone to forget Your kindness or rebel against Your authority. __________________needs to know Your love. He/she needs more than an intellectual understanding of Your existence; rather he/she needs to experience the love You have demonstrated in my life. Break through his/her hard heart, and cause him/her to truly experience Your life-transforming love and to be able to join with me in giving You thanks for all You are and all You have done.
종려주일을 준비하며 호산나 찬양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