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28일 새벽예배
시편 147편
1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선함이여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2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며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며
3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4 그가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것들을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
5우리 주는 위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시도다
본문 2-3절에서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며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며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한 것으로 보아 시편 147편은 유다 백성이 바벨론 포로생활로부터 돌아왔을 때 지어진 시라고 생각됩니다. 이 시편은 “할렐루야”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로 끝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라는 말은 “야훼를 찬양하라”,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 시편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입니다. 1절에서도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선함이여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하고, 7절에서도 “감사함으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수금으로 하나님께 찬양할지어다.” 하며, 12절에서도 “예루살렘아,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시온아 네 하나님을 찬양할지어다.” 합니다.
단지 하나님을 찬양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선하고 아름답고 마땅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 시편은 온통 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지 그 이유로 가득 차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시편 147편의 기자가 내세우는 하나님찬양의 첫 번째 이유는 치유와 회복 곧 구원입니다. 시인은 가장 최근에 일어난 큰 사건 속에서 경험한 하나님을 먼저 생각한 것입니다. 즉 유다 백성으로 하여금 그 치욕스럽고 고통스러운 바벨론 포로생활을 끝내고 꿈에 그리던 조국으로 돌아와 무너진 예루살렘을 다시 세우고 민족공동체를 회복하게 하셔서 그들이 마음 속 깊이 입은 상처를 아물게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그를 찬양해야 할 이유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두 번째 이유는 그의 전지전능하심입니다. 5절을 봅니다: “우리 주는 위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시도다.” 유다 백성이 바벨론의 포로상태에서 해방되고 잃어버린 나라로 돌아가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과 성읍과 민족공동체를 재건한다는 것은 그들이 눈물과 한숨 가운데 꿈꾸기는 했을지 몰라도 실제로 이루어지리라고 믿기는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을 무너뜨린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그것을 명한 것입니다. 페르시아 또한 이방나라인데 그 왕이 그런 조치를 취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일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역사의 주인이시고 만유의 주권자이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이 놀라운 일이 에스라 1:1-4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머물러 살든지 그 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그 밖의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 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에 세울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기쁘게 드릴지니라.’ 하였더라.”
모든 나라와 그 왕들의 마음까지도 당신의 뜻대로 움직이시는 하나님은 사실은 지구상의 민족과 나라들 뿐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들까지도 모두 주관하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지혜와 권능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셨기에 그를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4절을 봅니다: “그가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것들을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 천문학자들에 따르면 우리의 은하계에는 천억 개의 별이 있고, 알려진 천체공간에는 천만 개의 은하계가 있으며, 그 알려진 천체공간은 이론적인 우주공간의 십억 분의 일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그 많은 별들을 일일이 다 셀 수도 없고 그 수를 대충 짐작만 할 뿐입니다. 우리는 그 별들의 이름을 스무 개만 외우려 해도 머리가 아플 지경인데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별들의 수효와 이름을 정확히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은 사람의 그것을 무한히 뛰어넘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정말로 “우리 주는 위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시도다.”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단지 그런 지혜와 권능을 소유하고 있는 분이시기만 한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지혜와 권능으로 당신의 백성이 치유와 회복을 얻도록 역사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6절에서 말하듯이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들은 붙드시고 악인들은 땅에 엎드러뜨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그를 찬양하는 일은 선하고 아름다우며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진정 “감사함으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수금으로 하나님께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나라와 민족들의 역사를 주장하시고 우주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큰 손길에로 우리의 눈을 돌리게 한 시인은 8-9절에서는 세상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세세한 손길로 우리의 시선을 향하게 합니다: “그가 구름으로 하늘을 덮으시며 땅을 위하여 비를 준비하시며 산에 풀이 자라게 하시며 들짐승과 우는 까마귀 새끼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도다.” 이렇게 우리 사람들뿐 아니라 산의 풀이나 들의 짐승이나 공중의 까마귀 새끼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이 살아가는 것이 다 하나님의 섬세한 돌보심의 역사로 인한 것임을 밝힌 시인은 10-11절에서 가장 중요한 점을 언급합니다: “여호와는 말의 힘이 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가 억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여기서 “말”은 군마를 말하며 “말의 힘”은 군사력을 의미합니다. “사람의 다리가 억세다”는 말은 전장을 달리는 병사의 다리가 튼튼하다는 뜻입니다. 강한 나라에 의해 자기 나라를 빼앗겨본 백성은 다시는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에서 군사력을 기르고 병사들을 튼튼히 훈련시켜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며 강조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에게서 언제나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오직 그의 은혜에 의지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시인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역사에서 이스라엘이 거둔 승리는 모두 하나님께서 친히 싸워주시고 그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의 명령에 순종한 이스라엘에게 선물로 주신 승리였음을 시인은 기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그와 멀어지며 그를 의지하지 않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 때마다 이스라엘은 쓰라린 패배와 굴욕과 고통과 탄식의 세월을 살아야 했음을 시인은 상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온 고백적 선언이 “여호와는 말의 힘이 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가 억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한 데서 “인자하심”은 하나님의 한결같으신 은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에게 배은망덕과 범죄와 실수를 거듭한 이스라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는 결코 내치고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나라를 빼앗기고 이방나라에 끌려가 오욕과 굴종의 역사를 경험한 유다 백성이 이제 해방과 국토의 회복을 얻고 새롭게 다짐해야 할 것은 힘센 말을 가지고 군사들의 다리를 억세게 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것이라고 시인은 외친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이라고 가르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이 그것만 잘 지키면 다른 모든 문제를 다 책임지시고 해결해주실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을 참으로 감사와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는 것입니다.
시편 147편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부끄러운 과거사를 돌아보게 하며 역사와 온 우주의 참 주인이신 하나님을 재발견하게 하고 그 앞에서 취할 바른 신앙과 삶의 도리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는 귀한 시편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지내온 발자취를 함께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 뜻으로 모든 것을 한 것같지만 결코 우리는 내 뜻대로 이룬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적인 욕심이 올라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하나님의 경륜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 아침에 기도하실 때 하나님이 지금까지 이루신 이들을 기억하시며 함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2019년 마지막 새벽예배를 주님께 드리며 주님이 우리를 인도하신 그 크신 능력을 찬양하며 기도하기를 기도합니다.
필수 암송 요절
Who's Your One? Day 28
Dear friends, don’t overlook this one fact: With the Lord one day is like a thousand years, and a thousand years like one day. The Lord does not delay his promise, as some understand delay, but is patient with you, not wanting any to perish but all to come to repentance. 2 PETER 3:8–9, CSB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 3:8-9)
Father, thank You for being patient with ____________________ . I know every day You extend his/her life is testimony to Your long suffering and desire for all people to know and personally experience the hope that comes through faith in Jesus Christ. I also understand You could return at any moment and, when You do, it will be too late for
those who have never repented of their sins and trusted You. I pray this reality will create a sense of urgency in my life and cause me to share with boldness. I ask that Your kindness will lead _____________to repent of his/her sins and experience life with You now and fore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