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여호수아(Joshua) 24:19 - 24:33
19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은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 너희의 잘못과 죄들을 사하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20 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 하니
21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아니니이다 우리가 여호와를 섬기겠나이다 하는지라
22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택하고 그를 섬기리라 하였으니 스스로 증인이 되었느니라 하니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증인이 되었나이다 하더라
23 여호수아가 이르되 그러면 이제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들을 치워 버리고 너희의 마음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향하라 하니
24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우리가 섬기고 그의 목소리를 우리가 청종하리이다 하는지라
25 그 날에 여호수아가 세겜에서 백성과 더불어 언약을 맺고 그들을 위하여 율례와 법도를 제정하였더라
26 여호수아가 이 모든 말씀을 하나님의 율법책에 기록하고 큰 돌을 가져다가 거기 여호와의 성소 곁에 있는 상수리나무 아래에 세우고
27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보라 이 돌이 우리에게 증거가 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이 돌이 들었음이니라 그런즉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을 부인하지 못하도록 이 돌이 증거가 되리라 하고
28 백성을 보내어 각기 기업으로 돌아가게 하였더라
29 이 일 후에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으매
30 그들이 그를 그의 기업의 경내 딤낫 세라에 장사하였으니 딤낫 세라는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 산 북쪽이었더라
31 이스라엘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아는 자들이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더라
32 또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가져 온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였으니 이곳은 야곱이 백 크시타를 주고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자손들에게서 산 밭이라 그것이 요셉 자손의 기업이 되었더라
33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도 죽으매 그들이 그를 그의 아들 비느하스가 에브라임 산지에서 받은 산에 장사하였더라
오늘 본문은 여호수아의 마지막 부분으로 여호수아의 설교로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19절에 여호수아는 “너희가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은”이라는 말을 합니다. 왜 여호수아는 여호와를 섬길 능력이 없다고 말하고 있을까요? 저는 본문의 번역이 잘못된 줄 알고, 영어 성경을 읽어봤습니다. KJV에는 You cannot Serve the Lord, 라고 번역했고, NIV성경은 You are not able to serve the LORD (Jos. 24:19 NIV)라고 번역했습니다. 거의 모든 성경은 우리는 하나님을 섬길 능력이 없다고 번역했고, 히브리어 성경도 우리는 그런 능력이 없음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모순적인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제 우리가 묵상한 말씀에 여호수아와 그의 가족은 하나님만 섬길 것을 다짐했고, 오늘 본문 21절에 백성이 “우리가 여호와를 섬기겠다”고 맹세까지 하는데 여호수아는 섬길 능력이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본문이 앞뒤가 잘 맞지 않는 것 같으니까 문장을 매끄럽게 하기 위해서 그 앞에 ‘적당히, 양다리 걸치면서, 다른 이방신들의 신앙과 혼합할 때’가 생략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적당히 섬길 수 없다”는 식으로…
그러나 저는 본문을 묵상하며 여호수아가 이렇게 말한 이유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여호수아는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바로 뒤에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라고 말합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카도쉬) 구별된 분입니다. 하나님은 죄 있는 사람과 구별된 분이기 때문에 죄의 본성을 가진 우리는 본질적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없고, 하나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에베소서 2장 3절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원래 하나님을 섬길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섬기고자 하는 마음은 가질 수는 있지만 우리 스스로는 하나님을 섬길 능력이 없습니다. 여호수아는 이 현실을 인식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능력이 없지만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 사실에 대해서 저는 본문에서 두가지를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철저한 은혜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섬길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2장을 계속 읽어 보면 4-6절에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풍성하신 그 큰 사랑이 우리를 구원하사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마치 내가 섬겨 주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거룩해 지려고 노력하며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레위기 19장 2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회중에게 고하여 그들에게 말하라. 너희는 거룩할지니라. 이는 나, 주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라.”
거룩을 의미하는 ‘카도쉬’가 구별된다는 뜻이기 때문에 영어로 ‘cut’, 잘라낸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어거스틴은 젊은 시절 엄청나게 방탕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랬던 그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자라 일컬어지는 귀한 자리까지 가게 됐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었을까? ‘cut’, 잘라내는 것을 잘했기 때문이다. 한번은 타락한 생활을 다 청산한 어거스틴이 길을 가다가 옛날 방탕하던 시절에 자주 어울리던 여자와 마주쳤다. 그 여자가 어거스틴을 알아보고 물었다. ‘혹시 어거스틴 아니에요? 요새는 왜 놀러 오지 않으세요?” 그러자 어거스틴이 한마디 했다. “당신이 전에 알던 그 어거스틴은 이미 죽었습니다.” 어거스틴은 잘라냈습니다. 세상과 구별되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질투하는 분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며 우리를 거룩하게 해 주셨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만일 이런 기회까지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한눈 팔고, 이방 신을 섬기는 경우 하나님은 화를 내신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어떻게 하나님이 화를 낼 수 있지? 라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하나님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가 풍성한 분임과 동시에 인격적인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순결한 신부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신부가 신랑을 쫓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간다면 그 모습을 보며 아무 느낌이 없기를 바라는 것은 신랑이 살아있는 분이라고 생각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아침에 나와 기도할 수 있는 것이 은혜임을 아십니까? 우리의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우리는 구원 받았고, 하나님께 나아갈 담력을 얻은 것입니다. 이 은혜를 잊지 않고, 하나님이 질투를 느끼지 않도록 하나님만 섬기는 백성되기를 기도합니다.
내일은 거룩한 주일입니다. 주님께 기쁨으로 나오기를 기도합니다.
내일 함께 드릴 찬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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