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일독성경말씀
시 86-88
매일성경묵상
삼상 29:1-11
1 블레셋 사람들은 그들의 모든 군대를 아벡에 모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스르엘에 있는 샘 곁에 진 쳤더라
2 블레셋 사람들의 수령들은 수백 명씩 수천 명씩 인솔하여 나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아기스와 함께 그 뒤에서 나아가더니
3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이 이르되 이 히브리 사람들이 무엇을 하려느냐 하니 아기스가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에게 이르되 이는 이스라엘 왕 사울의 신하 다윗이 아니냐 그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여러 날 여러 해로되 그가 망명하여 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그의 허물을 보지 못하였노라
4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그에게 노한지라 블레셋 방백들이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을 돌려보내어 왕이 그에게 정하신 그 처소로 가게 하소서 그는 우리와 함께 싸움에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가 전장에서 우리의 대적이 될까 하나이다 그가 무엇으로 그 주와 다시 화합하리이까 이 사람들의 머리로 하지 아니하겠나이까
5 그들이 춤추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던 그 다윗이 아니니이까 하니
6 아기스가 다윗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정직하여 내게 온 날부터 오늘까지 네게 악이 있음을 보지 못하였으니 나와 함께 진중에 출입하는 것이 내 생각에는 좋으나 수령들이 너를 좋아하지 아니하니
7 그러므로 이제 너는 평안히 돌아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수령들에게 거슬러 보이게 하지 말라 하니라
8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내가 당신 앞에 오늘까지 있는 동안에 당신이 종에게서 무엇을 보셨기에 내가 가서 내 주 왕의 원수와 싸우지 못하게 하시나이까 하니
9 아기스가 다윗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내 목전에 하나님의 전령 같이 선한 것을 내가 아나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은 말하기를 그가 우리와 함께 전장에 올라가지 못하리라 하니
10 그런즉 너는 너와 함께 온 네 주의 신하들과 더불어 새벽에 일어나라 너희는 새벽에 일어나서 밝거든 곧 떠나라 하니라
11 이에 다윗이 자기 사람들과 더불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떠나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돌아가고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르엘로 올라가니라
블레셋과 이스라엘이 본격적으로 전쟁을 시작합니다. 다윗은 사울의 칼을 피해 블레셋으로 망명하여 살았는데 이제 선택의 순간이 온 것입니다. 완전히 블레셋 사람이 되어 이스라엘과 전면전에 참여할 것인가? 아니면 그동안 아기스 왕을 속이며 유다 지파의 적들을 섬멸해 온 것처럼 전투에 참여하는 척만 해야 할 것인가?
만약 다윗이 블레셋과 함께 서 있는 모습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본다면 다윗은 앞으로 이스라엘과 완전히 적이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다윗은 지금 시점에서 블레셋과 등을 돌릴 수 없는 난감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 같이 난감한 상황이 자연스럽게 해결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블레셋과 참전할 의사를 표명했지만, 블레셋 방백들이 극구 반대한 것입니다. 함께 참여 했다가 뒤통수를 맞을 수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다윗이 이같은 흐름을 예측하고 전쟁에 참여한다고 한 것이었을까요? 다윗은 자연스럽게 전투에서 빠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오히려 이같은 상황에서 왜 함께 싸우지 못하게 하느냐며 큰 소리로 따지기 까지 합니다. 결과는 무엇입니까? 아기스는 다윗에게 이번 전쟁에 꼭 참여시키고 싶지만 방백들이 극구 반대하니 그들의 불편한 심기를 건드리지 말고 조용히 시글락으로 돌아가 달라고 부탁합니다. 이 순간 다윗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다윗은 하나님께 감사했을 것입니다. 겉으로는 억울하다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시원함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읽으며 다윗이 연기를 잘한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습니다. 전에는 아기스 왕 앞에서 미친 사람 연기를 함으로 목숨을 구하더니 이제는 진짜 블레셋 사람이 된 것처럼 연기하는 것입니다. 마치 영화의 한 장 면을 보는 듯 합니다. 이 에피소드에서 몇가지 생각해 볼 점이 있습니다. 첫째, 아기스는 다윗의 결백함을 세 차례나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원수들도 다윗의 의로움에 대해서는 흠잡을 수 없다는 것이 저자가 강조하는 검입니다. 둘째, 이야기가 시작될 때 다윗은 매우 난처한 입장에 놓여 있었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라도 그는 결코 이스라엘을 향하여 창을 들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끝날 때, 그는 전혀 다치지 않고,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며, 오히여 그들의 “축복"을 받으며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다윗은 참으로 믿기 어려울 정도의 행운아 였습니다. 아니 상상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을 누린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은총으로, 다윗은 이스라엘을 상대로 전쟁을 하지 않았으며, 더 나아가 사울의 죽음에 어떠한 형태로도 연루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하나님이 명령하신 “아멜렉 진멸"에 나서게 됩니다. 사울이 죽어가는 동안, 다윗은 사울이 평생 하지 못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단순히 운이 좋은 사람이었던 것일까요? 그의 연기력이 뛰어나 아기스는 쉽게 속은 것일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을 것이 아니라 운을 빌며 연기 연습을 해야 할 것입니다. 다윗은 결코 그렇게 성공의 길을 간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그의 삶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에 담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사는 삶… 그것이 우리의 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