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2일
마태복음 9장
14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15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16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1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1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관리가 와서 절하며 이르되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 하니
19 예수께서 일어나 따라가시매 제자들도 가더니
20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21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23 예수께서 그 관리의 집에 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떠드는 무리를 보시고
24 이르시되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비웃더라
25 무리를 내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
26 그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더라
(마9:14-26)
우리에게 4복음서를 주신 이유가 있습니다. 각 복음서마다 사건의 시차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고, 관점이 조금씩 달라서 역사적 사실을 의심 받기도하지만, 복음서는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35년 후부터 (마가복음이 65-70년경에 쓰여졌다고 알려짐) 기록되었기 때문에 저자마다 기억의 조각들이 조금씩 다를 수는 있습니다. 만일 우리에게 단 하나의 복음서만 있었다고 한다면 한 저자의 기억이나 그 복음서가 기록된 공동체의 관심사 때문에 본문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이 제자들을 처음 만나는 과정도 요한복음이 없었다면 베드로가 어떻게 예수님을 소개 받았는지, 그의 이름이 어떻게 게바가 되었는지 몰랐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혈루증 여인과 소녀의 기록도 그렇습니다. 마태복음 보다는 마가복음이 이 부분을 좀더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가의 기록에 의하면 이 여인은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막 5:26) 라고 기록하며 이 여인이 12년간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은 죽은 여자 아이의 아버지에 대해서 관리라고만 했는데 마가는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라고 기록하며 그의 이름과 직책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살리신 여자 아이의 나이도 마태복음에 나타나지 않지만 마가는 12살임을 밝힙니다. 마가복음보다 조금 늦게 쓰여진 마태복음은 왜 이런 기록을 누락했는지에 대해서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4개의 복음서를 서로 대조하고 보완하면서 읽으면 한 사건에 대해서 더 깊이 알게 됩니다. 4복음서를 우리에게 주신 이유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두 여자가 나옵니다. 마가복음의 도움을 받으면 혈루증 여인이 병으로 앓았던 기간과 소녀가 살아온 시간이 같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12년간 혈루증 여인은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져 갔습니다. 12년간 율법적으로 불결하다는 이유로 사람들과 접촉하지도 못하고 살았습니다. 고치지도 못하는 의원들에게 속아 모든 것을 탕진했습니다. 모든 소망이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반면 12년간 살아온 소녀는 회당장의 딸입니다. 회당장은 유대인 사회에서 인정받는 지식과 재력을 겸비한 사람입니다. 12년간 어려움 없이 살아온 딸입니다. 두 여인은 완전히 다른 12년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현재, 두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기적이었습니다. 본문의 말씀은 두 사람을 대조, 비교하면서 우리에게 어떠한 사람이든, 어떠한 삶을 살았든 기적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 기적은 믿음으로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십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만지면 나을 수 있다는 믿음. 딸이 방금 죽었지만, 손이라도 얹어 주면 살아날 수 있다는 믿음.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입니다. 주변에서 보면 어떻게 감히 옷자락을 만지면 나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어떻게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라며 조롱 받을 수 있지만, 이 두 여인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기적은 믿음으로 가능했기에 우리의 삶에서 아버지 하나님께 우리의 상황을 간절히 말하며 주님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 달라는 믿음을 보여야 합니다. 쿨한척, 괜찮은척, 할 상황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를 위해서, 가정을 위해서, 자녀를 위해서, 직장을 위해서 대충 “알아서 해 주세요”가 아니라 구체적인 기도제목을 올려 드리며 간절함으로 기도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1. 내일은 거룩한 주일이고, 열린교회라는 이름으로 처음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보면 두렵고 떨립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그러나 열린 마음으로 함께 예배 드리기를 기도합니다.
2. 앞으로 열린교회가 하나님께 쓰임받아 믿지 않는 분들, 상처 받으신 분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구원의 기쁨이 회복되는 공동체가 될 수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자리에 우리가 함께 서 있습니다. 한분 한분을 통해서 이루실 하나님의 큰 계획을 바라보며 축복하는 기도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3. 공동체 안에 산모들이 있습니다. (김서연, 성혜미) 산모와 태아가 강건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4. 박사학위논문으로 힘과 지혜가 더욱 필요한 공동체 가족들이 계십니다. (조재호, 최슬기, 김서연) 논문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기도부탁드립니다.
5. 자녀들이 타지에서 공부하고 일하는 가정이 있습니다. (강산하, 강산민, 한상인, 손예린, 송은경) 자녀들의 신앙이 더 굳건해 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6. 함께 예배 드리는 자녀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른과 함께 한국 말로 예배 드리기 때문에 기도와 격려가 필요합니다. (강산성, 김주은, 김주명, 손지우, 손은지, 송은아)
주님의 임재를 사모하며 찬양과 기도를 올려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