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역개정과 새번역을 같이 올려 드립니다.
마태복음 13장 31-42절 (개역개정)
31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32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33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34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35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36 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37 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38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39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40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41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마태복음 13장 31-42절 (새번역)
31 예수께서 또 다른 비유를 들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밭에 심었다.
32 겨자씨는 어떤 씨보다 더 작은 것이지만, 자라면 어떤 풀보다 더 커져서 나무가 된다. 그리하여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
33 예수께서 또 다른 비유를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누룩과 같다.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가루 서 말 속에 살짝 섞어 넣으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올랐다."
34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비유로 무리에게 말씀하셨다. 비유가 아니고서는, 아무것도 그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35 이것은 예언자를 시켜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는 것이었다. "나는 내 입을 열어서 비유로 말할 터인데, 창세 이래로 숨겨 둔 것을 털어놓을 것이다."
36 그 뒤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서, 집으로 들어가셨다. 제자들이 그에게 다가와서 말하였다. "밭의 가라지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십시오."
37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38 밭은 세상이다. 좋은 씨는 그 나라의 자녀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자녀들이다.
39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악마요, 추수 때는 세상 끝 날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다.
40 가라지를 모아다가 불에 태워 버리는 것과 같이, 세상 끝 날에도 그렇게 할 것이다.
41 인자가 천사들을 보낼 터인데, 그들은 죄짓게 하는 모든 일들과 불법을 행하는 모든 사람들을 자기 나라에서 모조리 끌어 모아다가,
42 불 아궁이에 쳐 넣을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오늘 본문 말씀은 지난해 11월 마지막 주일에 했던 설교와 같은 본문입니다. 지난 설교이고, 묵상하기에는 좀 긴 내용이지만, 열린교회 성도님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말씀이라 편집해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 (천국)이 어떤 곳인지에 대해서 오늘 본문에서 겨자씨와 누룩으로 비유하여 설명해 주십니다. 먼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하늘나라 (천국)은 우리가 죽어서 가는 곳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실에서의 하나님 나라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이땅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음을 선포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왕 되실 때 일어날 수 있는 나라의 모습을 비유로 설명하십니다. 특히 오늘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는 이제 막 시작되는 예수님 공동체 (교회)의 모습이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성장할 것인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먼저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겨자씨는 아주 작은 것을 의미할 때 사용합니다. 유대인들은 겨자씨를 씨앗 중에 가장 작은 씨앗으로 여깁니다. 그런데 이 작은 씨앗이 일년에 2m - 4m가 넘게 성장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른 어떤 씨앗보다 빨리 자라서 새들이 그 사이에 쉼을 얻을 수 있는 식물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왜 하나님 나라를 겨자씨로 비유하셨을까요?
첫째, 하나님 나라는 자기 희생을 통해서 성장하는 곳임을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겨자씨가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나물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니.”라고 하셨습니다. 자라는 것, 모든 나물 보다 커지는 것, 큰 가지를 내는 것, 즉 ‘성장’ 해야 하는 것이 천국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오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하나님 나라는 무조건 커져야 하는 구나, 교회도 크게 지어야 하고, 사람도 많이 모아야 하는 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땅도 사고, 무리해서 교회 건물도 짓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겨자씨가 성장할 때 겨자씨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단지 겨자씨가 할 수 있는 것은 심겨지는 것입니다. 씨앗이 땅에 심겨진다는 것은 땅에서 자신의 모습이 없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단단한 껍질을 깨뜨릴 때, 즉 자기의 희생이 있을 때 겨자씨는 싹이 나기 시작하고, 성장할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은 천국에서는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면 결코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려 주십니다. 천국은 성장을 해야 하는데, 그 전제 조건이 내 자신을 버리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씨앗이 될 때 싹이 나고, 성장하고, 가지를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2장 24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자기 희생을 통해서 성장하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은 겨자씨 비유를 통해서 천국은 포용할 수 있는 곳임을 보여주십니다. 32절 하반부에 보시면 “큰 가지를 내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큰 가지와 그늘입니다. 그늘과 가지는 새들을 보호할 수 있는 은신처를 제공하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지치고 힘든 새들이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는 곳입니다.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는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죄인들, 병든 자들, 가난 한 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예수님께로 오는 어린 아이들도 막지 않으시고 모두의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우리의 삶이 천국의 모습을 한다는 것은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자 한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이고, 보듬고 안식처를 제공하는 곳으로 성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겨자씨와 함께 누룩을 말씀하십니다. 이 비유에서 특이한 점은 여자의 등장입니다. 예수님 당시 여자는 인구 통계에도 들어가지 않는 존재였습니다. 여자는 예수님이 조금전에 말씀하신 아주 작은 겨자씨와 어쩌면 일맥 상통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작은 존재가 무시당하지 않는 곳이 천국이라는 것을 말씀하시고, 천국은 들에 흔히 피어난 겨자나무처럼 가정에서 부엌에서 즉 우리의 일상에서 시작되는 것이라는 것을 알려 주십니다.
이 여성분은 가루 서 말을 준비합니다. 이 양에 대해서 NIV는 ‘a large amount of flour’라고 번역했습니다. 상당히 많은 양입니다. ‘말’은 헬라어로 사타이고, 히브리어로 스아인데, 1 스아는 에바의 1/3이기 때문에 서 말은 1 에바로서 22-23리터가 되는 양입니다. 이 가루의 양은 절대로 혼자서 소비할 수 있는 양은 아닙니다. 손님들 접대하거나 혹은 성전에 제물로 드릴 때 사용된 양입니다. 아브라함이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한 사건에 보면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에 들어가 사라에게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창18:6)는 말씀이 있습니다. 또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어린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성전에 올라가서 드렸던 소제의 양과 같습니다. “젖을 뗀 후에 그를 데리고 올라갈새 수소 셋과 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 한 가죽 부대를 가지고 실로 여호와의 집에 나아갔는데 아이가 어리더라”(삼상 1:24)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은 떡을 나누는 공동체라는 것을 암시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가루에 비유한 것이 아니라, 누룩에 비유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왜.. 누룩에 천국을 비유하셨을까요? 사실, 누룩은 예수님이 부정적으로 사용하실 때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6절에서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8장 15절에서는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셨습니다. 누룩은 자신이 가진 것보다 더 부풀리는 효과를 가져오고 누룩은 발효되게 하기 때문에 빵을 쉽게 썩게 만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누룩이 가진 긍정적인 면이 있기 때문에 천국은 누룩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누룩이 가진 특징을 몇 가지 살펴봤으면 좋겠습니다.
첫째 누룩은 옆에 있는 밀가루를 변화시키고, 또 그 옆에 있는 밀가루를 변화시켜 조금만 넣어도 전부가 부풀어 오르게 됩니다. 누룩은 자신의 성질을 전달하는 전도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도성 Conduction, Conductivity) 마찬가지로 천국은 전도 (전염)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전도성은 전달하는 성질”입니다. 이 전도성은 억지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연 발생적으로 일어나서 옆에 있는 가루도 무교병에서 유교병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왜 천국은 전도성이 있을까요? 좋아서 그렇습니다. 내가 천국 백성이 되고 보니까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옆에 있는 사람 (밀가루)가 불쌍해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가가서 그 사람도 천국 백성을 만듭니다. 우리의 삶이 천국이 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삶을 볼 때 부러움이 가득해서 나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삶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둘째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일이 조용히 밤 사이에 일어납니다. 전도성을 가지라고 해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옆에 있는 사람이 자연적으로 물들어 버리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전도는 시끄럽게,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는 내가 누룩으로 변화된 삶을 살면 어.. 신기하네.. 저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살지? 예수 만나더니 이상해 졌어. 나도 믿어볼까? 라고 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게 전도하는 것입니다. 내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을 그냥 전하는 것입니다. 실천하는 것입니다.
셋째, 천국이 누룩과 같다고 하신 것은 천국은 겨자씨처럼 팽창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천국은 맛있는 곳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무교병과 유교병을 비교해서 먹어 보신 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무교병은 그냥 딱딱한 밀가루 반죽 같습니다. 구워서 먹으면 약간 고소할 수도 있지만, 맛을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무교병은 고난을 되 새길 때, 유월절에 과거의 힘든 상황을 생각하며 먹습니다. 하지만, 유교병은 맛이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먹고 싶어 집니다. 천국은 천국 백성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고 자연스럽게 그 맛을 내는 곳입니다.
누룩은 가루를 변화시키고, 옆에 있는 가루도 변화시킵니다. 천국은 자신이 변할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한 모습이 천국의 모습이고 교회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저는 지금의 우리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라고 확신합니다.
겨자씨처럼 작습니다. 한 여인의 부엌처럼 작은 공간입니다. 하지만, 땅에 심겨진 겨자씨처럼 자신을 헌신하는 분들이 모였고, 한 여인이 최선을 다해 만드는 빵처럼 서 말 가득 반죽이 되는 곳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겨자씨처럼 성장하기를 기도합니다. 뿐만 아니라 겨자 나무처럼 성장하여 주변의 많은 새들이 깃들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