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18일 새벽예배
본문: 창세기(Genesis) 13:1 - 13:18
1 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2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3 그가 네게브에서부터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4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5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6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7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
8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9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11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12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13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17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18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어제 말씀 묵상을 통해서 아브라함의 잘못된 선택에 대해서 묵상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위기의 순간에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자 아내를 누이라고 말하자고 했습니다.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한 것입니다. 사래를 뺏고자 하는 사람은 더 자유롭게 사래를 데리고 갈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 것입니다. 위기의 순간에 아브라함도 실수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고, 이런 선택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더욱 굳건해야 함을 배웠습니다.
오늘은 또 다른 선택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은 이집트에서 돌아와 벧엘과 아이 사이에 장막을 치고 그곳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하나님께 제사드리고 예배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에게 또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너무도 많은 축복을 받아서 조카 롯과 함께 살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롯도 일가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롯의 가축이 많이 있었습니다. 좁은 공간에 두 가족이 목축업을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서로 좋은 꼴을 먹이기 위해서 목자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롯에게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고 말하며 롯이 먼저 선택하라고 하고 서로 헤어지기로 결심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말을 들은 롯은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봅니다. 그곳은 온 땅에 물이 넉넉하고,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 같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롯은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쪽으로 옮겼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게 되었고, 롯은 도시들에 머물며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게 됩니다.
많은 분들이 본문을 묵상하면서 롯의 선택이 잘못 되었다고 말합니다. 저도 과거에 이 본문으로 설교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저는 눈으로 보이는 것이 좋다고 절대로 선택하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롯은 눈을 들어 자신의 눈에 보기 좋은 곳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눈에 좋다고 선택하면 잘못된 선택이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택할 때 신중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다시 묵상했을 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룻의 선택이 과연 잘못된 선택일까? 어짜피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만일 선택이 잘못되었다면 그런 선택지를 제시한 아브라함에게 잘못이 있는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말씀을 묵상해 보니까 룻의 지역 선택에 문제가 있다기 보다는 삶의 방식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롯은 목자입니다. 그는 도시의 삶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목자는 초장을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그런데 본문을 읽어보면 롯은 도시들에 머물며 라고 말씀합니다. 룻은 목자의 삶을 포기하고 도시로 들어가 편안한 삶을 선택했습니다. 편안한 삶을 선택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런 선택의 결과로 소돔까지 들어간 것이 문제입니다. 물론 롯이 소돔에서 사는 것 자체가 죄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롯은 아브라함과 함께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자로 이곳에 왔다면 그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롯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삶을 선택하며 살아아간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갑니다. 우리의 선택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닐 때가 많습니다. 미국에 와서 사는 것이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닙니다. 우리가 직업을 선택하는 것도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닐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한탄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내가 그때 그것만 선택하지 않았어도.. 내가 그때 그곳으로 이사만 가지 않았어도..내가 그때 직업을 다른 것을 잡기만 했어도.. 하지만, 후회하는 말을 잘 들어보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한 후에 그곳에서의 삶의 방식의 문제가 많을 때가 있습니다. 좀더 편리한 삶을 살다가 결국 죄 많은 소돔성까지 들어가게 된 롯처럼 조금씩 하나님과 멀어지고, 조금씩 나태해 지게 되고, 조금씩 세상에 물들어 가게 되면서 결국에는 하나님 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롯은 나쁜 곳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나쁜 삶을 산 것입니다. 만일 그가 선택한 곳이 소돔이라 할지라도 그는 선한 삶을 살고 그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쳐 그들 중에 10명의 의인을 만들 수 있었더라면 소돔은 멸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정착한 곳은 헤브론입니다. 헤브론은 롯이 선택한 동쪽 지역에 비하면 결코 살기 좋은 곳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곳에 이미 가나안 족속이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곳에서 여호와를 부릅니다. 그리고 그곳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갑니다. 창세기 23장에 보면 사라가 죽게 됩니다. 그때 헷 족속 사람들이 아브라함에 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 결국 아브라함은 은 사백세겔을 주고 막벨라 묘지를 사게 됩니다. 23장을 읽으면 아브라함은 분명 그 지역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선택이 문제가 아니라 삶의 모습이 문제였습니다.
내가 했던 선택들을 한탄하지 마십시기 바랍니다. 그 선택 안에서 훨씬 더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모습을 돌아보시고 아브라함의 모습으로 승리하며 살기를 기도합니다.
맥체인 성경읽기
창세기 19장, 마태복음 18장
느헤미야 8장, 사도행전 18장
오늘의 암송 요절
요한복음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