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29:1-19
1 히스기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구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비야요 스가랴의 딸이더라
2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실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3 첫째 해 첫째 달에 여호와의 전 문들을 열고 수리하고
4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동쪽 광장에 모으고
5 그들에게 이르되 레위 사람들아 내 말을 들으라 이제 너희는 성결하게 하고 또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성결하게 하여 그 더러운 것을 성소에서 없애라
6 우리 조상들이 범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하나님을 버리고 얼굴을 돌려 여호와의 성소를 등지고
7 또 낭실 문을 닫으며 등불을 끄고 성소에서 분향하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므로
8 여호와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에 진노하시고 내버리사 두려움과 놀람과 비웃음거리가 되게 하신 것을 너희가 똑똑히 보는 바라
9 이로 말미암아 우리의 조상들이 칼에 엎드러지며 우리의 자녀와 아내들이 사로잡혔느니라
10 이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와 더불어 언약을 세워 그 맹렬한 노를 우리에게서 떠나게 할 마음이 내게 있노니
11 내 아들들아 이제는 게으르지 말라 여호와께서 이미 너희를 택하사 그 앞에 서서 수종들어 그를 섬기며 분향하게 하셨느니라
12 이에 레위 사람들이 일어나 니 곧 그핫의 자손 중 아마새의 아들 마핫과 아사랴의 아들 요엘과 므라리의 자손 중 압디의 아들 기스와 여할렐렐의 아들 아사랴와 게르손 사람 중 심마의 아들 요아와 요아의 아들 에덴과
13 엘리사반의 자손 중 시므리와 여우엘과 아삽의 자손 중 스가랴와 맛다냐와
14 헤만의 자손 중 여후엘과 시므이와 여두둔의 자손 중 스마야와 웃시엘이라
15 그들이 그들의 형제들을 모아 성결하게 하고 들어가서 왕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명령한 것을 따라 여호와의 전을 깨끗하게 할새
16 제사장들도 여호와의 전 안에 들어가서 깨끗하게 하여 여호와의 전에 있는 모든 더러운 것을 끌어내어 여호와의 전 뜰에 이르매 레위 사람들이 받아 바깥 기드론 시내로 가져갔더라
17 첫째 달 초하루에 성결하게 하기를 시작하여 그 달 초팔일에 여호와의 낭실에 이르고 또 팔 일 동안 여호와의 전을 성결하게 하여 첫째 달 십육 일에 이르러 마치고
18 안으로 들어가서 히스기야 왕을 보고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의 온 전과 번제단과 그 모든 그릇들과 떡을 진설하는 상과 그 모든 그릇들을 깨끗하게 하였고
19 또 아하스 왕이 왕위에 있어 범죄할 때에 버린 모든 그릇들도 우리가 정돈하고 성결하게 하여 여호와의 제단 앞에 두었나이다 하니라
히스기야는 아버지 아하스 왕이 했던 일들을 지켜 봤습니다.
8절에 히스기야는 “여호와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에 진노하시고 내버리사 두려움과 놀람과 비웃음거리가 되게 하신 것을 너희가 똑똑히 보는 바라” 고 말합니다. 히스기야는 유다가 어떻게 망해가는지 보고 있었습니다. 그 원인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25세에 왕이 되면서 전격적으로 많은 변화를 시도합니다. 먼저, 스스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합니다. 이 본문의 원어를 직역하면 여호와의 눈 앞에서 똑바로 서 있었다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여호와의 눈 앞에 서있음을 인식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 없는데도 아담처럼 하나님의 눈을 피합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하나님 눈 앞에 있음을 알았고, 그 앞에서 올바른 행동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행하기로 작정했을 때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성전을 정화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아하스는 성전의 기구를 뇌물로 바쳤고, 성전을 파괴했고, 성전의 문을 닫았습니다. 히스기야는 문을 먼저 열고, 성전을 수리했습니다. 성전을 수리하는 방법은 더러운 것을 먼저 없애고, 성전에서 해야 할 일들, 분향하고, 번제를 드리는 일을 회복한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특별한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을 섬길 때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 자세를 배웁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게으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게으름은 하나님을 섬기는 방해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게으름에 대한 글을 찾아 봤습니다. 신원하 교수의 ‘게으름’에 대한 글을 읽고 함께 나누고 싶어 글을 요약해 옮겨 봅니다.
“기독교 전통은 게으름에 대해 관용적이지 않다. 단지 좀 쉬는 것, 좀 여유를 갖는 것에 그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초기 교회의 교부들과 특히 사막 수도사들은 게으름을 ‘대죄’의 하나로 취급할 정도로 경계했다. 성 베네딕트는 게으름을 일컬어 “영혼의 원수”라고 했다. 그는 수도사들이 게으름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매일 노동을 해야 하고 정해진 시각에 함께 모여 경전읽기(lectio divina)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면을 강조한 것이다. 이것은 게으름을 영적인 삶에 치명적인 독으로 보았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서 단절되는 상태로 이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게을러지면 영적인 생활에 느슨해지고 결국 하나님과 이웃에 대해 무뎌지게 마련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런 게으름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게으름을 극복하는 첫 걸음이자 가장 중요한 것은 ‘목표’를 확보하고 분명히 하는 것이다. 방향과 도달지점, 즉 ‘과녁’이 분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목표가 분명하면 그에 따라 도달하는 길을 선택할 수 있고, 그 다음으로는 교통수단을 정하게 된다. 목표가 없이 그냥 걷는다면 방향을 잃을 수도 길을 잘못 들 수도 있다. 분명한 목표가 있으면, 그리고 누구도 뭐라 할 수 없을 만큼 고상한 목표를 세워 놓으면, 그것을 향해 나가는 사람의 자세가 달라지게 마련이다.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22-4)고 가르쳤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골 3:16)고 일상적으로 경건한 삶을 훈련해 나갈 것을 주문했다. 삶에 분명한 목표가 있으면, 더욱 모질게 훈련하게 될 것이다. 믿음의 분량과 비전을 확장하고 목표를 더 높은 데 두며 훈련해야 할 것이다.
게으름은 은밀하게 찾아오기에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길을 걸을 때 큰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는 일은 드물고 오히려 작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게으름도 방심하는 사이에 자리 잡게 된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어려운 상황에서 특히 깨어있어야 한다.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에도 결국 정의가 승리한다는 분명한 성경적 진리를 소망하며, 그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 그분의 때에 역사하실 것을 믿는 신앙을 갖고서, 불의한 것을 볼 때 “아니오”라고 분명히 말하고, 불이 났으면 “불이야” 소리쳐야 한다. 내가 소리쳐도 효과가 없다는 패배적인 생각에, 그저 넘기거나 뒤로 물러서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선을 행하는 것이 당장 변화도 가져오지 못한 채 피곤만 가중시키는 듯이 보이더라도 때가 이르면 반드시 거두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갈 6:9) 살아야 할 것이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우리가 한 날을 다른 날들보다 낫게 여기거나 혹은 모든 날들을 똑같이 여기거나 관계없이, 가장 중요한 것은 매 날이 모두 주께 속한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야 할 것을 강조했다.(롬 14:5-6) 우리에게 주어진 어떤 날과 시간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겨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더 열심히 그의 나라와 의를 위해 성실하게 걸어 나가야 할 노릇이다.”
게으르지 않는 것도 훈련을 해야 합니다. 특히 영적인 게으름은 알지 못하는 틈에 찾아 오는 죄입니다. 게으르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여러 일들이 우리를 게으름으로 유도합니다. 때로는 기쁨이, 또는 슬픔이, 아픔이 우리를 하나님 찾는 일을 어렵게 합니다. 이럴 때 일 수록 더 힘을 내서 하나님을 힘써 찾아 게으름을 물리쳐야 할 것입니다.
맥체인 성경통독
역대하 8장, 요한삼서 1장,
하박국 3장, 누가복음 22장
오늘의 암송 요절
로마서 12장 14-16절
14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15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16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