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7편
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2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3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4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5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6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7 여호와여 내가 소리 내어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
8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9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마시고 떠나지 마소서
10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11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시고 내 원수를 생각하셔서 평탄한 길로 나를 인도하소서
12 내 생명을 내 대적에게 맡기지 마소서 위증자와 악을 토하는 자가 일어나 나를 치려 함이니이다
13 내가 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될 줄 확실히 믿었도다
14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수년전, 한국에서 보이스피싱이 기승을 부렸습니다. (지금은 더 진화한 방법으로 한다고 하네요...) 보이스피싱을 여러 방법으로 하는데, 가장 악질적인 방법은 아들이나, 딸을 내가 데리고 있으니 무사히 보려면 돈을 보내라는 보이스피싱입니다. 자녀들이 가까운 곳에 있어 확인이 되는 경우에는 사기치지 말라며 자신있게 끊지만, 비슷하게 아이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아빠.. 살려줘요.." 라는 소리까지 들려주면 패닉 상태에 빠지고, 아무 일도 하지 못합니다. 함께 동역하던 목사님에게 이런 전화가 걸려 온 것입니다. 다행이 아들이 학교에 무사히 있다는 확인이 되어 30분 만에 사건이 종결되었지만, 이 30분 동안 목사님은 패닉 그 자체였습니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 했지만,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우왕좌왕 하는 모습이 있고, 손을 떠는 모습으로 아들이 다니는 학교에 전화 했습니다.
저는 옆에서 그 모습을 보면서 저도 당황했고, 걱정, 두려움 그 자체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물론 30분안에 이 사건이 보이스피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 30분간 사람이 두려움에 빠지면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고,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고, 우왕 좌왕 하면서, 횡설 수설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사람들에겐 약 75가지의 공포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삶에서 여러가지 이유로 두려움에 사로 잡힐 수 있습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을 지은 다윗은 두려움에 사로 잡혔습니다. 학자들은 본문이 배경을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다윗 성에서 쫓겨나 노령의 나이에 맨발로 도망했을 때라고 합니다. 2절에 보면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죽음을 직면했습니다. 수 많은 군사들이 다윗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3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다윗은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어떻게 두렵지 않고, 태연할 수 있을까요? 물론 다윗은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고, 곰과 사자와 싸우고, 골리앗과 싸운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런 일 쯤은 쉽게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도 사람입니다. 다윗도 두렵기 때문에 맨발로 도망한거 아닙니까? 그러나 그는 평정심을 찾았고, 태연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 그 이유를 저는 4절에서 찾고 싶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여러분 같으면 다윗이 바래야 하는 것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만일 여러분이 여호와께 바라는 한가지가 있다면 이 상황에서 무엇을 바래야 할까요? 저 같으면 압살롬을 대적할 군대를 보내 달라고 바랄 것 같습니다. 압살롬을 저주하며 하나님께 그를 물리쳐 달라고 했을 거 같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단 한가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사모했고, 하나님을 경험했고, 하나님과 함께 하심을 경험했을 때 평안을 찾았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바라며 살아가는지요? 코로나 상황에서 한가지 하나님께 바랄 것이 있다면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여러분에게 평안을 주고, 안정을 주고, 안전을 제공할 수 있는 존재는 과연 누구일까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바랄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 줄 아시나요? 우리는 감히 하나님을 알지도 못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큰 사랑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할 수 있는 자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자격을 받은 것이 얼마나 큰 일인지 잘 모르고 살아갑니다.
제가 에반스빌에서 목회할 때 러시아 교회도 같은 공간을 함께 사용했습니다. 러시아 교회는 오후 1시에 모였는데, 예배가 4시에 끝납니다. 그리고 목사님이 얼마나 설교를 오래 하는지 강단 위에 늘 선풍기를 놓고, 목사님의 설교 시간에 틀어 놓습니다. 저는 그 때만 해도 그들이 왜 이렇게 예배를 오래 드리는 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친밀한 사귐’이란 책을 쓴 제임스 E. 화이트의 간증을 듣고 이해했습니다. 그는 러시아에서 한 교회의 주일 아침 예배 설교를 부탁 받고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설교자는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명이었습니다. 예배는 거의 세 시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예배가 긴 것에 놀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교인들의 열의에 더욱 놀랐습니다. 3시간 내내 그들은 자리에서 이탈하지 않았고 지루한 기색도 없었습니다. 예배가 끝난 뒤에도 집에 돌아갈 마음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화이트 목사님은 미국 교회는 한 시간만 지나면 여기저기서 수런거리며 난리가 나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러시아 목사님께 물었습니다. 러시아 목사님은 그 이유를 이야기해주었습니다. 몇 년 전만해도 러시아에서는 예배를 드리다 발각되면 다 감옥에 갔습니다. 그런데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되면서 자유롭게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들은 너무 감격하여 예배를 드립니다. 그들은 또 언제 예전처럼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일이 올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이 마지막 예배처럼 드립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내 생애에 마지막 예배라고 여긴다면 우리의 예배하는 태도가 달라질 것입니다. 그들이 여호와께 구하는 것 하나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저도 목회하면서 두려움이 있습니다. 이것 저것 해 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기도할 때 마다 하나님은 무엇이 기초가 되어야 하는지 알려 주십니다. 저는 열린교회가 단지 한가지 바라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교회 건물? 많은 성도? 그런데 모든 분들이 하나님을 바라지 않으면 소용 없습니다. 하나님을 바랄 때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 펴지며, 하나님을 바랄 때 회복이 일어납니다.
다윗은 우리에게 이렇게 명령합니다.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만나시고, 구원하시고, 회복시키는 여호와를 기다리는 다윗과 같은 백성 되기를 간구합니다.
맥체인 성경통독
열왕기상 20절, 데살로니가전서 3장,
다니엘 2장, 시편 106편
오늘의 암송 요절
로마서 12장 6-7절
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