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27일
- ncyeollin
- 2일 전
- 3분 분량

[빌2:19-30]
19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의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20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21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22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23 그러므로 내가 내 일이 어떻게 될지를 보아서 곧 이 사람을 보내기를 바라고
24 나도 속히 가게 될 것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25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
26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가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27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셨고 그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28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그를 보낸 것은 너희로 그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라
29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그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30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합니다.
첫째로, 바울은 디모데를 자신과 관점이 같은 사람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빌립보에 보내고 싶다는 뜻을 밝힙니다. 왜냐하면 빌립보 교회 교인들의 사정을 디모데를 통해서 들음으로 안위를 (기쁨) 얻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왜 디모데를 보내고 싶은지 20절에 디모데를 소개하는데 머라고 소개하냐 하면.. 나와 똑 같은 심정으로 너희를 염려해줄 사람이 디모데 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빌립보 교회의 사정을 알기 위해서는 다른 통로를 통해서 알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굳이 디모데를 보내서 빌립보 교회의 사정을 알기 원하는 것은 디모데가 나와 같은 마음으로 너희의 사정을 듣기 때문에 나에게 와서 전해주는 이야기는 무엇이든 믿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바울이 디모데를 신뢰한 것과 같은 동역자가 있습니까? 바울이 그 다음절에 모두 다 자기 일에만 관심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게 죄는 아니지만…만일 자기 일에만 관심있는 사람으로 교회가 이뤄진다면 그것처럼 불쌍한 교회도 없습니다. 여러분 사회에서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여러분과 같은 관점으로 같은 마음으로 회사를 바라보는 동역자가 필요하죠? 기쁨으로 함께 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회사의 발전이 아니라 자기 발전을 위해서 회사 다니는 사람.. 회사에서는 월급만 받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투잡, 스리잡.. 뛰는 분들 있다고 하는데… 물론 회사에서도 최선을 다하면 괜찮죠.. 그런데 회사에서는 피곤하니까.. 꾸벅 꾸벅 졸고… 밤에 자기일 하고… 그럼 같이 일하고 싶지 않습니다. 교회에서도 그렇습니다. 자기 일에만 관심을 가지고 자기 필요만 채우는 신앙생활을 한다면 모두가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모두가 디모데가 되고 디모데를 양육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디모데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죠…
두번째로 바울은 디모데를 함께 수고하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22절에 보면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그런데 함께 수고하는 것은 무작정 노동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수고하는 것은 때로는 내 권리를 포기하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함께 수고하는 자는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고 물러서지 않는 것입니다. 옆에 늘 같이 있는 것입니다. 2차 전도 여행은 빌립보 교회부터 수난의 연속입니다. 빌립보지역에서는 로마 사람들이 우리가 받아들이지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해서 바울을 감옥에 투옥시키기도 합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로 갑니다. 데살로니가에서는 유대인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3주만에 쫓겨가서 베뢰아 지방으로 갑니다. 그런데 그곳에서도 데살로니가 유대인들이 쫓아와서 다시 아덴으로 가고 아덴에서 고린도로 갑니다. 죽을 고비를 수도 없이 넘깁니다. 이때 마다 디모데는 실라와 함께 늘 바울과 함께 있거나 바울을 먼저 피난 시키고 뒷정리하는 일을 감당합니다.
그렇다면 디모데는 어떻게 바울이 신뢰하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우리는 어떻게 누군가의 디모데가 될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디모데가 되기 위해서는 꾸준히 동참해야 합니다. 마음으로 아멘만 해서는 안되고 따라 나서야 합니다. 뭔가 Action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동참은 수년 동안 지속되어야 합니다. 디모데가 바울과 동역하며 예수님을 전도한 것은 하루 이틀, 일 이년이 아닙니다. 디모데가 바울을 아버지처럼 모시고 따른 것은 10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 것입니다. 셋째로 사람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을 섬겨야 올바른 디모데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향해서 자신의 아들이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선교 사역으로 불렀습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가르쳤습니다. (디모데 전후서를 보면 어떻게 목회를 해야하는지 자세히 나옵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키웠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바울도 그렇고 디모데도 그렇고 그들은 바울이 디모데의 주인이라고 절대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비록 바울이 이끌고 디모데는 배우는 입장이었지만 그둘을 이끄는 주인은 따로 있었는데 예수그리스도만이 그들의 주인이었습니다. 디모데후서 2장 3절에 보면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찌니” (딤후 2장 3절) 바울은 디모데를 부르며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 나를 위해 싸우고 나에게 충성하는 나의 군사가 아니라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군사라고 선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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