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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30일




[빌4:1-9]

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2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8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사도 바울이 부탁한 “주안에 서라”는 명령의 의미를 되새겨 보기 바랍니다. 

“주 안에서”라는 문구는 바울이 자주 사용하는 문구입니다. 주 안에서의 의미를 좀더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문구와 비교해보면 뜻이 명확해 집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문구는 예수님의 그리스도적 행위, 즉 구원의 사건인 그의 죽음과 부활에 초점을 맞춘 개념입니다. 그래서 김세윤 박사에 의하면 그리스도안에서라는 문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의 죽음과 부활의 덕을 입은 상태”, 즉 “죄인으로서의 옛 아담적 자아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여 새 아담적 생명을 얻은 상태”를 말한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죠.. (고후 5:17).. 그러나 ‘주 안에서’라는 문구는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하나님 우편에서 높임 받아 만유를 통치하시는 주권 주인 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따라서 주 안에서라는 것은 “예수의 주권의 영역 안에서, 그의 주권에 힘입어, 그의 주권에 순종하여”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의 성도들에게 대적들의 핍박이 있지만 그들을 사주하는 사단의 세력을 꺾고 만유를 다스리시며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예수의 주권에 굳건히 서 있으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인은 로마의 황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여러분.. 주 안에 계십니까? 주님을 진정한 주인으로 모시고 계십니까? ‘주 안에서’는 개역개정에는 표현이 안되어 있는데, 굳건하게 서 있으라는 뜻을 포함합니다. 그렇다면 주안에 있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기에 사도 바울은 주 안에 있으라고 계속 강조할까요? 

첫째는 고백적 의미가 있습니다. 주 안이라는 선언과 함께 나는 스스로 종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나는 주님의 말씀만을 따라가는 종이 된다는 고백이죠. 둘째는 공간적의미로 세상과 구별되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여러분 세상과 구별되었다는 말을 다른 말로 하면 “거룩하다는” 것입니다. 주안에 있는 우리는 거룩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 안에 서 있다는 것에 대해서 거룩한 자라는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자부심을 갖는 자는 거룩한 사람으로서 말과 행동을 합니다. 거룩~~하게 생긴 도포를 입고 거룩하게 말을 하라는 게 아니라 거룩한 자는 예수님처럼 남을 배려하는 말.. 아.. 내가 이 말을 할 때 상대방의 마음은 어떨까? 내가 이 행동을 할 때 저 사람이 시험받지 않을 까? 그런 거룩한 부담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확신이 있을 때 한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 주 안에 서 있다는 것은 의미적으로 자유 함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조금 전에 저는 주안에 있다는 것은 종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주안에 서 있다는 것을 자유 함으로 말씀 드립니다. 모순이죠… 종인데 자유인이에요… 왜 그런지 아세요? 유한한 존재인 인간은 무한 속에서는 자유를 못 느낍니다. 유진 피터슨이 지은 자유라는 책에 보면… 에이리얼 듀란트 (Ariel Durant)라는 사람의 말을 인용합니다. “자유의 첫째 조건은 자유의 한계다. 자유를 절대적인 것으로 만들면 그것은 이내 혼돈 가운데서 죽어 버린다.”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자유함을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가 제한 적이어야 하는데 (감옥에 갇혀있는 제한은 아닙니다.) 이러한 제한 적인 것이 분명할 수도록 그 안에서 완전한 자유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주 안 서 있습니까? 여러분이 서 있는 곳은 어디인지 스스로 돌아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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