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21일
- ncyeollin
- 5월 20일
- 3분 분량

[에9:1-19]
1 아달월 곧 열두째 달 십삼일은 왕의 어명을 시행하게 된 날이라 유다인의 대적들이 그들을 제거하기를 바랐더니 유다인이 도리어 자기들을 미워하는 자들을 제거하게 된 그 날에
2 유다인들이 아하수에로 왕의 각 지방, 각 읍에 모여 자기들을 해하고자 한 자를 죽이려 하니 모든 민족이 그들을 두려워하여 능히 막을 자가 없고
3 각 지방 모든 지방관과 대신들과 총독들과 왕의 사무를 보는 자들이 모르드개를 두려워하므로 다 유다인을 도우니
4 모르드개가 왕궁에서 존귀하여 점점 창대하매 이 사람 모르드개의 명성이 각 지방에 퍼지더라
5 유다인이 칼로 그 모든 대적들을 쳐서 도륙하고 진멸하고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게 마음대로 행하고
6 유다인이 또 도성 수산에서 오백 명을 죽이고 진멸하고
7 또 바산다다와 달본과 아스바다와
8 보라다와 아달리야와 아리다다와
9 바마스다와 아리새와 아리대와 왜사다
10 곧 함므다다의 손자요 유다인의 대적 하만의 열 아들을 죽였으나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더라
11 그 날에 도성 수산에서 도륙한 자의 수효를 왕께 아뢰니
12 왕이 왕후 에스더에게 이르되 유다인이 도성 수산에서 이미 오백 명을 죽이고 멸하고 또 하만의 열 아들을 죽였으니 왕의 다른 지방에서는 어떠하였겠느냐 이제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냐 곧 허락하겠노라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냐 또한 시행하겠노라 하니
13 에스더가 이르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면 수산에 사는 유다인들이 내일도 오늘 조서대로 행하게 하시고 하만의 열 아들의 시체를 나무에 매달게 하소서 하니
14 왕이 그대로 행하기를 허락하고 조서를 수산에 내리니 하만의 열 아들의 시체가 매달리니라
15 아달월 십사일에도 수산에 있는 유다인이 모여 또 삼백 명을 수산에서 도륙하되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고
16 왕의 각 지방에 있는 다른 유다인들이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대적들에게서 벗어나며 자기들을 미워하는 자 칠만 오천 명을 도륙하되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더라
17 아달월 십삼일에 그 일을 행하였고 십사일에 쉬며 그 날에 잔치를 베풀어 즐겼고
18 수산에 사는 유다인들은 십삼일과 십사일에 모였고 십오일에 쉬며 이 날에 잔치를 베풀어 즐긴지라
19 그러므로 시골의 유다인 곧 성이 없는 고을고을에 사는 자들이 아달월 십사일을 명절로 삼아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더라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두가지 사실을 배워야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백성을 지키시는 부림절의 구원의 역사는 계속 된다는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정권하에 ‘유대인 대학살’ 속에서 죽음의 수용소에 갇혀 있던 유다인들에게 에스더서는 소중하게 취급되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다시 한 번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며 희망을 가졌습니다. 실제로 수용소 내에서는 에스더서를 소유한 유다인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처형되었다고 합니다. 세월이 지났지만 살아남은 유다인들은 아직도 당시의 악몽을 잊지 못합니다. 케렌 암스트롱이란 작가는 저서에서,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면 그분은 유다인 대학살을 막으셨을 것이다. 만약 그분이 막으실 수 없었다면 그분은 무능하거나 불필요한 존재이다. 만약 그분이 막을 수 있음에도 막지 않으셨다면 그분은 괴물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간과한 것은 하나님은 이런 인간의 모든 죄의 문제를 이미 십자가에서 해결하셨다는 것입니다. 아우슈비츠의 참혹상만이 아니라 인간이 저지른 모든 죄를 예수님이 짊어지셨습니다. 그분께 속한 자에게 더 이상 죽음의 구속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분과 함께 부활의 소망만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에스더서에서처럼 자기의 백성들을 죄와 사망에서 영원히 지키십니다. 그분은 무능하지도 않고, 괴물도 아닙니다. 그분의 십자가의 구원과 영원한 생명의 예비하심을 모르거나 거부해서는 안됩니다. 지금도 구원의 역사는 계속됩니다.
둘째로, 부림 정신의 진정한 축하는 종말에 이뤄질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에스더서의 부림절의 의미는 “유다인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라고 했습니다. 부림절이 되면 유다인들은 지금도 회당에 모여 에스더서를 읽으며 모르드개의 이름이 나오면 ‘와!”하고 환호하고 하만의 이름이 나오면 ‘우!’하며 야유를 보낸다고 합니다. 유대교의 전통에 따르면, 그들은 이날을 축하하며 “모르드개여 축복을 받으라”와 “하만이여 저주를 받으라”는 말이 구분이 안될 때 까지 술을 마신다고 합니다. 그러나 부림 정신의 진정한 축하는 종말에 이뤄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천국에 가는 그날까지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자들이 끊임없이 있을 것이고 죄악된 세상에서 사는 한 우리의 고통과 환란도 계속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요한계시록 에서는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는 말씀으로 믿는 자들을 위로하십니다. 그리고 모든 믿는 자들의 부림 정신의 진정한 축하는 마지막 때에 모든 심판이 끝나고 이뤄질 것임을 하나님의 말씀은 가르쳐 주십니다. 그 때의 축하를 고대하며 그 때까지 우리는 하나님께 죽도록 충성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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