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28일
- ncyeollin
- 4월 27일
- 2분 분량

아가 6장 4-13a
4 내 사랑아 너는 디르사 같이 어여쁘고, 예루살렘 같이 곱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하구나
5 네 눈이 나를 놀라게 하니 돌이켜 나를 보지 말라 네 머리털은 길르앗 산 기슭에 누운 염소 떼 같고
6 네 이는 목욕하고 나오는 암양 떼 같으니 쌍태를 가졌으며 새끼 없는 것은 하나도 없구나
7 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 한 쪽 같구나
8 왕비가 육십 명이요 후궁이 팔십 명이요 시녀가 무수하되
9 내 비둘기, 내 완전한 자는 하나뿐이로구나 그는 그의 어머니의 외딸이요 그 낳은 자가 귀중하게 여기는 자로구나 여자들이 그를 보고 복된 자라 하고 왕비와 후궁들도 그를 칭찬하는구나
10 아침 빛 같이 뚜렷하고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한 여자가 누구인가
11 골짜기의 푸른 초목을 보려고 포도나무가 순이 났는가 석류나무가 꽃이 피었는가 알려고 내가 호도 동산으로 내려갔을 때에
12 부지중에 내 마음이 나를 내 귀한 백성의 수레 가운데에 이르게 하였구나
13 돌아오고 돌아오라 술람미 여자야 돌아오고 돌아오라 우리가 너를 보게 하라
오늘 말씀은 일시적인 안일함과 나태함에 빠져 신랑의 부름에 게으름을 피웠던 술람미 여인으로 인해 찾아온 위기를 극복함으로 이전보다 더 단단한 사랑으로 결속되는 중요한 원리에 대한 묵상입니다. 아가서의 절정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4절부터 10절까지는 신랑이 부르는 사랑의 노래가 등장합니다. 신부에 대한 묘사가 이어지는 10절까지는 다른 설명이 필요치 않아 보입니다. 기쁨, 아름다움이라는 의미의 디르사는 여로보암 때부터 오므리 시대에 이르기까지 약 40년간 북이스라엘의 수도였습니다. 디르사에는 새로운 성벽과 망대, 공공건물이 들어서면서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아름다운 도시라는 생각이 자리잡혀 있었습니다. 그렇게 디르사처럼 아름답고 그 고운 것이 예루살렘 성 같고, 깃발 세운 군대처럼 당당하다고 표현합니다.
우리는 술람미 여자가 자신을 포도원에서 일하느라 얼굴이 까맣게 그을린 여자(1:5-6), 골짜기에 핀 평범한 백합화(2:1)로 여겼던 것을 기억합니다. 예루살렘 도성에 사는 여자들과 비교할 수 없는 시골 여자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여자들에게 복된 여자라 칭함을 받는 것입니다. 마치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처럼 읽어지는 부분입니다.
11-12절을 읽겠습니다. “골짜기의 푸른 초목을 보려고 포도나무가 순이 났는가 석류나무가 꽃이 피었는가 알려고 내가 호도 동산으로 내려갔을 때에 부지중에 내 마음이 나를 내 귀한 백성의 수레 가운데에 이르게 하였구나” 이 말씀은 어떤 뜻이 있을까요? 이 구절들은 두 연인의 행복한 재회가 이루어질 것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암시가 구체적으로 현실화되어 두 연인의 재회가 이루어짐은 물론 한충 더 깊고 성숙한 사랑을 나누게 된 사실을 신부의 노래를 통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푸른 초목, 포도나무의 순, 석류나무의 꽃 등은 모두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 사이의 사랑의 증거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2절은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 앞으로 나오게 된 근본 원인이 어떠한 강제력이나 외부의 위협이 아니라 오직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바탕이 된 자원하는 마음이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회복된 사랑의 힘이 술람미 여인으로 하여금 솔로몬을 환대하지 못했던 데 대한 죄책감을 이기고 솔로몬의 앞으로 나아가게 할 만큼 강력했던 것입니다.
쉬운 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11] (여자) 호두나무 숲에 내려가, 골짜기에 새움이 텄는지, 포도나무에 싹이 돋았는지, 석류꽃이 피었는지 보고자 했더니, [12] 나도 몰래, 그가 어느새 내 백성의 귀한 병거에 나를 태우네.”
오늘 본문은 우리의 목자이신 주님은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한다고 끊임없이 이야기합니다.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술람미 여자지만 예루살렘의 예쁜 여자들을 뒤로하고 술람미 여자를 사랑하는 목자인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을 다시 깨닫고 마음의 안식을 얻었던 술람미 여자의 모습은 마치 세상에 지치고 상한 성도가 그래도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 때문에 마음이 회복되는 모습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어쩌면 그렇게 우리 상황, 감정, 시험, 유혹들 앞에 주님이 변함없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확신을 갖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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