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2025년 3월 11일

작성자 사진: ncyeollinncyeollin






누가복음 10:25-42


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29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35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38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41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오늘 말씀은 너무 익숙한 두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는 사마리아인 비유입니다.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질문합니다. 시험한다는 단어는 “에크페이라조”로 마귀가 예수님을 넘어 뜨리기 위해 성경을 의도적으로 잘못 인용했을 때 예수님이 사용한 단어입니다. 율법사는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묻습니다. 율법사는 궁금해서 묻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답으로 꼬투리를 잡고자 함입니다. 이런 의도를 아시고 예수님은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어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고 반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읽느냐고 물어 보십니다. 

책을 읽을 때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방법은 콘템플라티오(contemplatio)로 이는 ‘텍스트를 사는 것”입니다. 텍스트를 읽고, 내용을 아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대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자세입니다. 그러나 율법사는 율법에 대해서 잘 알았지만, 율법의 내용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28절에 예수님은 그가 율법을 읽는 자세를 간접적으로 지적하시며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셨습니다. 

이렇게 까지 말씀하시면 자신을 돌아보며 깨우쳐야 하는데, 율법사는 그동안 옳게 살아온 듯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님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이니까”라고 묻습니다.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웃을 사랑하며 살았기 때문에 자랑하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삶을 알고 계십니다. 유대인들은 동족은 끔찍히 사랑합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을 비롯한 이방 사람들은 경멸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이웃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사마리아 인들은 야곱의 자손들로 12지파를 같이 이루고 있었던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앗수르에게 멸망하여 혼혈이 되었다는 이유로 경멸의 눈길로 피했던 것입니다.  자신들이 이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만 사랑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율법을 자기들 마음대로 읽고 적용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사마리아인 비유를 말씀합니다.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충격적입니다. 착한 유대인이 사마리아인을 도운 것이 아닙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이 유대인을 도운 것입니다. 그것도 유대인 제사장과 레위인이 부정하다 생각하여 피한 강도 당한 사람을 사마리아인이 자기 돈과 시간 그리고 이웃사랑의 모범을 보이며 구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역으로 질문하십니다. 누가 사마리아인의 이웃이냐고 묻지 않으시고, 강도 당한 자의 이웃이 누구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이웃의 경계를 정해서 도와주는 유대인들의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질문 하신 것입니다. 이웃의 경계를 정하고 도와주는 것이 유대인들의 생각이고, 우리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가 생각하는 이웃이 이웃이 아니라 그가 누구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우리의 이웃이고 그를 돕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려 주십니다. 여러분의 이웃은 옆집 사람이 될 수도 있지만, 한번도 본 적이 없어도 우리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이 우리의 이웃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율법사와의 대화를 나누신 후  한 마을로 들어가 마르다의 집에 들어가십니다. 언니 마르다는 식사 준비하느라 분주했지만,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아래 앉아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마리아의 행동은 옳은 행동이고, 마르다의 행동은 나쁜 행동이라는 흑백논리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저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바쁜 마르다의 모습을 통해서 분주한 현대인들이 교정해야 할 마음의 자세를 배워야 합니다. 

먼저, 마르다의 문제를 살펴 보면 마르다는 여러가지 일로 분주했고, 염려과 근심을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음식하는 일로 마르다를 나무란 것이 아닙니다. 마르다는 기쁨으로 음식을 준비할 수 있었는데, 많은 일로 그의 마음이 빼앗긴 것입니다. 추측해 보면 예수님 한분만 그 집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최소한 3명 이상의 제자들이 함께 왔을 수도 있습니다. 한가지 음식만 준비 한 것이 아니라 여러 음식을 준비하며 음식을 기다리는 손님을 보면서 안절부절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때 마리아는 예수님 앞에 앉아 아무 일도 도와 주지 않았습니다. 마리아의 모습을 보면서 더 마음이 상했고, 마리아에게 언니를 도와주라고 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에게도 마음이 상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마르다의 마음이 상했다는 것에 충분히 동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마치 마리아의 손을 들어 준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해 보면 마르다가 충분히 기쁨으로 섬길 수 있었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도 있었음에도 환경을 지배 받는 것이 안타까워 그에게 충고하시는 것을 깨닫습니다. 예수님은 한가지 만이라도 족하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의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마르다가 너무 많은 음식을 준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마르다는 마리아가 도와 줄 계산으로 많은 일을 시작했을 수도 있지만, 원래 계획을 넘었고, 분주함에 마음을 빼앗겨 이 상황이 통제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좋은 마음으로 일을 시작했지만, 여러가지 상황이 우리의 마음을 흩어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 사단은 옆에 있는 사람을 원망하게 만들고 근심 (마음이 나뉨) 하게 만듭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의 회복을 원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가정일, 직장일, 교회사역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처리해야 해서 염려와 근심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중요한 일을 먼저 해야 하는데 급하다고 생각한 일이 치고 들어와 마음을 흩어 버리죠.. 여러분이 생각하는 중요한 일이 무엇입니까? 1월 1일에 계획했던 일들이 뒤로 밀려나 있는 것은 아닙니까? 염려와 근심에 사로잡히지 말고, 중요한 한가지 일부터 한다면 회복횐 마르다가 되어 주님을 섬기는 제자가 될 것입니다. 





 

Comentários


ABOUT US

열린교회는 미국 남침례교단에 소속된

복음적인 교회입니다. ​ 

CONTACT

이메일: ncyeollin@gmail.com

카톡ID: yeollin

Phone: 919-323-2182

LOCATION

가정예배장소: 4029 Robious Ct. Cary, NC 27519

Website and contents © 2019 Yeollin Church   • Address: 10310 Chapel Hill Rd, Morrisville, NC • 27560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