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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2월 25일






[눅6:39-49]

39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40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41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43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44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45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46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47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48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치되 잘 지었기 때문에 능히 요동하지 못하게 하였거니와

49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오늘 본문에 보시면 예수님의 말씀에서 “나를 살피를 세 가지 질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질문은 “나는 누구를 따르고 있는가?” 입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따르고 계십니까? 우리는 쉽게 예수님을 따르고 있다고 답을 하지만 어느 순간 내 삶을 돌아보면 예수님이 가셨던 길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합니다. 예수님은 이 같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39절에 비유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아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예수님은 지금 따르고 있는 대상이 누구인지 분별하고 주의할 것을 경고하십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앞을 못 보는 사람이 누군가를 따라 갑니다. 자신이 앞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앞서 가는 사람, 자신을 인도하는 사람을 따라 갈 수밖에 없고, 그 사람을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앞서가는 사람도 앞을 못 본다는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의 미래는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내가 누구를 따라가고 있는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것의 중요함을 설명하시기 위해 40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제자는 자기 선생을 닮아 갑니다. 이 당시에 선생과 제자와의 관계는 인격적인 관계였습니다. 예수님과 열두 제자들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제자는 선생과 거의 같이 살았습니다. 같이 살면서 책이 아니라, 선생이 직접 전하는 말과 행동으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제자가 선생에게서 모든 것을 배우고 나면, 그 제자는 선생과 같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올바른 선생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올바른 선생을 따름으로 바른 길을 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따르고 있습니까? 

두번째 질문은 ‘나는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가?” 입니다. 예수님이 이번에는 나무와 열매에 대한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나무에 따라 그 나무의 열매가 열리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입니다. 누구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는 분명한 원리입니다. 예수님은 이 원리를 일깨워주시며, 이것을 사람에게 적용하십니다. 43절부터 보겠습니다.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43-45)

예수님은 열매를 통해서 나무를 알 수 있듯이, 열매를 통해서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내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은 나의 말과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그것이 열매입니다.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모습이 아니라, 나의 진짜 모습은 내가 삶에서 맺는 열매가 보여주는 것입니다. 특별히 예수님은 여기서 입으로 말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입은 우리가 영적으로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합니다. 여러분은 만약, 매일 내가 하는 말을 평가한다면, 스스로에게 어떤 평가를 하시겠습니까? 혹시 여러분의 말에 잦은 불평과 습관적인 비난과 분노가 가득하다면 그것이 나의 마음에 있는 실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변화를 위해, 단순히 겉모습이 아니라 내적인 변화를 위해서 주님의 도움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 세번째 질문은 “나는 어디에 집을 짓고 있는가?” 입니다. 예수님은 들은 말씀을 실천하라는 확실한 경고로 마무리하십니다. “너희가 나의 하는 말을 잘 들었느냐? 그럼 그 들은 것을 행하여라.” 예수님은 행함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며 집 짓는 비유를 하십니다. 비유에서 집을 짓는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집을 짓기 위해, 먼저 땅을 깊이 팝니다. 그리고 큰 바위 위에 집의 기초를 놓고, 집을 짓습니다. 그 후에는 폭우가 쏟아집니다. 그래서 큰물이 밀려와서 집에 부딪힙니다. 이 물살은 빠르고 강력했지만, 그 집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견고한 기초 위에 세워진 집이라 안전합니다.

반면에 또 다른 한 사람은 집을 짓는데, 기초 없이 흙 위에 집을 짓습니다. 그러고 나서 물이 들이치자, 흙 위에 지은 집은 곧바로 무너집니다. “곧” 그 즉시 무너집니다. 예수님은 무너진 상태를 강조하기 위해 파괴됨이 심하다는 표현을 덧붙이십니다. 흙 위에 지은 집은 한순간에 무너져 버렸습니다. 이 비유를 통해 예수님이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듣고 행하는 자와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의 차이입니다. 예수님이 이 비유에서 가르쳐주시는 교훈은 분명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행하는 사람은 삶의 시련들을 극복할 수 있는 튼튼한 기초 위에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을 결정짓는 것은 어떤 집을 짓느냐가 아닙니다. 겉으로 보기에 얼마나 화려한지, 얼마나 큰 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기초입니다. 집을 어디 위에 짓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집을 짓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을 묵상하시며 제시된 세가지 질문에 자신있는 답을 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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