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2월 14일
[눅3:1-14]
1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 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 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 왕으로,
2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3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4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5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6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7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9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10 무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11 대답하여 이르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12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13 이르되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
14 군인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누가복음 3장에는 요한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세상에 태어날 때 하나님의 예언을 통해서 삶의 목적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1장 15-16절에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하나님께로 많은 돌아오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요한이 태어났을 때 그의 아버지 사가랴는 성령 충만함으로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이 아이야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준비하여 주의 백성에게 그 죄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하리니..” 요한의 삶은 주의 백성을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침례 요한은 부패한 예루살렘을 떠나 광야에 거하며 백성들에게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외치는 삶을 살아갑니다.
저는 오늘 그가 외쳤던 회개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 먼저 회개란 구약의 히브리어로 '슈브'로, 그 말 속에는 '길을 바꾸다' '되돌아오다'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마음속 중심에 있는 죄에 대한 영적 자각으로 마음이 변화되고 돌이킨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이 쓰여진 헬라어로는 회개는 '메타노이아'인데 이 역시 마음의 변화, 돌이킴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침례요한이 외치는 회개는 단순히 마음으로 후회하는 것이 아닙니다. 침례요한이 말하는 회개는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회개가 일어나는 데는 몇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첫째는 깨달음입니다. (Knowing) 탕자의 비유에서 둘째 아들이 아버지께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상태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너무 비참함을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삶이 하나님이 원하는 삶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돌아올 마음이 생깁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잘 깨닫지 못합니다.
둘째로 회개는 우리가 원래 있어야 했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라 돌아가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곳이 어디입니까? 아버지의 품입니다. 탕자 비유에서 둘째 아들은 아버지가 받아주실지에 대한 걱정이 있었지만, 그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버지에게 돌아가는 것이 회개입니다. 요엘서 2장 12절로 13절에 야훼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야훼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몸을 찢는 형식적인 모습에 그치지 말고, 주님께로 돌아오면 하나님은 어떠한 죄라도 널리 용서해 주시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은 선민, 선택받은 백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회개없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안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요한은 침례 받으러 오는 무리들에게 도끼가 나무에 놓여있다고 말합니다. 마음으로만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한다면 그들은 결코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8-9절) 말로만 교인이라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실질적으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아버지의 품이 우리가 가야 할 곳입니다.
마지막으로 회개는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열매는 결과입니다. 회개 한 사람은 그 결과가 있어야 합니다. 말로만 회개했다고 하고 삶이 그대로이면 결코 회개한 것이 아닙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영접한 후 그의 삶이 달라졌습니다. 재산의 반을 나눠 가난한 자에게 나눴고, 토색한 것은 4배를 갚았습니다. 회개의 결과가 있었습니다. 회개의 열매는 먼곳에서 찾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회개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봉사 활동을 합니다. 봉사 활동 현장에서는 열매가 있는 것 같지만 그의 가정과 직장에서는 전혀 열매가 없다면 그것은 진정한 회개의 열매가 아닙니다. 어떤 분은 회개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정기적으로 단기 선교를 갑니다. 그런데 그의 삶은 전혀 변화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가 아닙니다.
침례요한에게 세리들이 나아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라고 물었을 때 침례 요한은 그들을 향하여 세리 직업을 그만두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현재 처한 자리에서 방향 전환을 명하였습니다. 또한 군인들을 향하여서는 손에서 무기를 버리고 군복을 벗으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폭력을 의지하여 살기 쉬운 세계니 어서 손을 털고 그만두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군인의 길을 걸어가라고 하였습니다. 다만 그 자리에서 삶의 방식이 바뀌어야 함을 가르쳤습니다. 옷 두 벌 가진 자나 혹은 먹을 것을 가지고 있는 자에게도 마찬가지 원리를 적용시켰습니다. 신앙에 도움이 안 되니 가진 옷을 버리라고 혹은 먹을 것을 쓰레기통에 내다 버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현재 처한 상황에서 주의 나라와 의를 위해 유용하게 사는 방법을 제시하였습니다. 이러한 원리는 오늘 우리들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자리는 현재 서 있는 곳입니다. 우리가 은혜의 주님 구원의 주님을 만나 주님께 나아와 마음을 찢으며 회개합니다. 이제부터 주를 위해 살겠다고 고백합니다. 이제부터 주님만 의지하고 살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렇다고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내고 하던 사업을 깨끗이 정리할 필요는 없습니다. 계속 하십시오. 대신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현재의 삶의 방식을 진지하게 살펴보시고 양심에 찔리는 부분이 발견되면 즉각 시정해야 합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할 자는 다른 사람이 아니고 바로 자신이고 또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하는 환경을 내 자신의 환경입니다. 소금이 제 역할을 하려면 부패하기 쉽고 냄새 나기 쉬운 자리에 놓여져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하는 자리는 이 세상이고 또한 자신들이 현재 삶의 기반을 두고 활동하는 곳입니다. 주님께 돌아왔다고 하여 세상을 정리한 뒤 보따리 달랑 메고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갈 필요가 없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삶의 바른 가치관과 바른 목표를 찾았으니 그 가치관 그 목표를 자기 자신에게 철저하게 적용하고 아울러 현재 자신의 환경에 적용하는 실천적인 행동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진정한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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