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2025년 2월 13일

작성자 사진: ncyeollinncyeollin



2025년 2월 13일 


[눅2:41-52]

41 그의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42 예수께서 열두 살 되었을 때에 그들이 이 절기의 관례를 따라 올라갔다가

43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44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45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46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47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

48 그의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의 어머니는 이르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49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50 그 부모가 그가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51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52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유대인 남자들은 1년에 세 번,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 때면 예루살렘에 가서 예배해야 했습니다. 남자들에게는 의무였지만 신앙이 좋은 가족들은 함께 여행을 함께하기도 했습니다. 갈릴리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직선거리로도 100km 정도 되는 먼 거리였습니다. 사마리아를 우회한다면 그보다 훨씬 더 먼 130km 정도로, 4-5일은 족히 걸렸을 거라 추정합니다.

예수님은 이 때 꼭 예루살렘에 가야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유대의 남자 아이는 열세 살 때부터 토라를 지키는 의무를 부여받았지만 예수님은 열두 살이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아직 성전에 가야하는 의무가 주어지지 않은 열두 살의 예수를 데리고 성전에 갔다는 것은 그들의 신앙이 자발적이었고, 또 깊었음을 잘 보여줍니다.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을 소홀히 여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계급이 재산의 정도와 비례했던 고대 사회에서, 목수라는 직업을 가졌던 요셉은 그리 풍족하게 가정을 꾸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그가 생업을 중단하면서까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가족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향했다는 오늘의 말씀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신앙의 의무가 주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먹고사는 문제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상충될 때,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일을 우선으로 두는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둘이 상충될 때, 오늘 요셉이 열두 살의 예수님을 데리고 생업을 중단하고 예루살렘으로 향했던 것처럼 내가 아닌 하나님 중심의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수많은 결정들을 합니다. 작게는 무엇을 먹을까부터, 어떤 직장으로 가야할까와 같은 중요한 결정들까지, 내가, 우리 가족이 하는 수많은 결정들이 나의 사사로운 영달과 이익을 위한 결정인지, 하나님의 백성다운, 주님을 위한 결정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다운 결정을 해나가는 오늘이 모여 우리의 삶이 될 때, 우리 삶이 주는 울림이 자식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그들의 삶을 말씀의 반석 위에 세우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유월절을 보낸 예수님 가정은 일행들과 함께 돌아갈 때 예수님이 아직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친족들과 함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하룻 길을 다 간 후에 예수님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돌아가 찾으니 예수님이 성전에서 선생들 중에 앉아 토론하고 있었습니다. 본문에 “선생들 중에”라고 표현된 “엔 메소”라는 표현은 사람들 한 가운데 위치했을 때 쓰는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그저 듣는 사람의 하나로 그곳에 계셨던 것이 아니라 율법교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그들에게 둘러쌓인 채로 토론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지혜와 대답, 곧 통찰력 있는 답변을 놀랍게 여겼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놀랐다는 말 “엑시스테미”는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날 때 이를 목격한 사람들이 느끼는 경이감을 나타낼 때 쓰는 말입니다. 단순히 신동이다, 영재다 이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서 말씀에 대한 이해력을 드러내신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권능을 엿보았다는 의미입니다.

이러는 사이 부모가 예수를 발견하고 나무랍니다. 잃어버린 자식을 찾으면서 겪는 불안감과 초조한 마음을 드러내는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자식으로서 부모의 동선을 따라야 했다는 당연한 룰을 어긴 것에 대한 꾸중입니다. 여기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원문에는 집이라는 표현이 없습니다. 우리말로 집이라 한 것은 의역이며, 지금 계신 곳이 성전이기 때문에 붙여진 것입니다. 이 표현에서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부른 사실입니다. 고대 유대 문헌들을 살펴봐도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표현한 적은 있지만 “나의 아버지”라고 부른 적은 거의 없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말씀하신 것은 상당히 독특한 표현으로, 성자 예수님께서 자신이 누구이며, 앞으로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정확하게 어떤 길로 나아갈지 알고 계셨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인간의 몸으로 오신 신이신 예수님이 그의 길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도전 되는 것은 우리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있는데, 우리는 과연 우리의 길을 제대로 알고 가는지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거하며, 누구와 함께 하며, 어떤 삶을 살고 있습니까? 나는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내는지 스스로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Comments


ABOUT US

열린교회는 미국 남침례교단에 소속된

복음적인 교회입니다. ​ 

CONTACT

이메일: ncyeollin@gmail.com

카톡ID: yeollin

Phone: 919-323-2182

LOCATION

가정예배장소: 4029 Robious Ct. Cary, NC 27519

Website and contents © 2019 Yeollin Church   • Address: 10310 Chapel Hill Rd, Morrisville, NC • 27560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