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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30일


[시149:1-9]

1 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의 모임 가운데에서 찬양할지어다

2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이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시온의 주민은 그들의 왕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할지어다

3 춤 추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며 소고와 수금으로 그를 찬양할지어다

4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

5 성도들은 영광 중에 즐거워하며 그들의 침상에서 기쁨으로 노래할지어다

6 그들의 입에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있고 그들의 손에는 두 날 가진 칼이 있도다

7 이것으로 뭇 나라에 보수하며 민족들을 벌하며

8 그들의 왕들은 사슬로, 그들의 귀인은 철고랑으로 결박하고

9 기록한 판결대로 그들에게 시행할지로다 이런 영광은 그의 모든 성도에게 있도다 할렐루야


오늘 본문은 ‘제3할렐시’ 또는 ‘할렐루야 시편’이라고 불리는 146-150편까지의 5편 중에서 4번째 시편입니다. 내용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촉구하고, 하나님께서 세상을 통치하시며 세상에 승리를 선언합니다. 이 시편에는 표제어가 없기 때문에, 누가, 언제, 어떤 사건을 배경으로 지었는지 알 수 없지만, 다른 할렐루야 시편과 동일하게 바빌로니아 포로에서 돌아온 후에, 예루살렘(스룹바벨) 성전을 건축하고, 무너져 방치되어 있었던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 한 후에, 영원하고 궁극적인 승리를 얻게 될 영광스러운 미래를 바라보며 지은 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먼저 시편 저자는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새 노래는 1차적으로는 ‘구원의 노래’입니다. 요한계시록 5장에 보면, 24장로들이, 성도들이 드린 기도를 담은 금 대접을 가지고 어린양이신 주님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어린양이 죽임을 당하심으로 사람들을 사셨다는 내용입니다. 그 때의 그 노래가 ‘새 노래’라고 합니다. 구원의 감격을 노래하는 것은 언제나 새 노래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찬양은 우리의 심령을 늘 새롭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감사하며 드리는 노래도 새 노래입니다.

시인이 성도들의 모임 앞에서 찬양을 한다고 합니다. 즉 신앙공동체, 예배공동체가 함께 찬양을 드리는데, 그것이 새 노래입니다. 이 시편이, 포로에서 돌아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고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부른 찬양이었다면, 그 찬양이 얼마나 감격스러웠겠습니까? 암울했던 바빌로니아의 포로에서 돌아와 성벽을 재건한 기쁨과, 하나님의 도우심을 소망하며, 함께 부른 노래가 새 노래가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이어서 2절에서 시인은 이스라엘이 즐거워하는 이유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무엇을 주셨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을 지으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시온의 주민(자녀)’이 그들의 왕으로 인해 즐거워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그 때에 예루살렘에는 왕이 없었기 때문에, 왕이신 하나님께서 다스려 주심에 대한 감사입니다. 그런데 왜 ‘예루살렘의 주민’이 아니라 ‘시온의 주민’이라고 표현했겠습니까? 그들이 예루살렘에 살고 있음에도 말입니다. ‘시온’은 예루살렘에 있는 작은 산, 언덕이지만, 거기에 성전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예루살렘의 사람들이 정치나 경제 공동체가 아니라 신앙공동체임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며,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겠다는 결단이 포함되어 있는 말입니다.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을 표현하는데 노래만으로는 부족해서 ‘춤’과 ‘악기’를 더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춤과 악기를 더하여 올려드리는 찬양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여기시는지를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4절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즐거워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인 이스라엘을 기뻐합니다.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에 아무 것도 없을지라도 서로가 기뻐합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이유가 무엇을 주셨기 때문이고, 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기뻐하시는 이유가 그들이 예물을 많이 드렸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순전한 기쁨에 이를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겸손한 자’는 ‘자신의 낮은 위치로 인해서 자신을 의뢰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높여주시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을 과대포장하는 사람입니다. 교만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지 않는 것은 그의 삶에는 하나님을 위한, 또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빈 공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을 많이 주셨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것만 해도 우리는 한 평생 춤추며 찬양하고, 악기로 찬양해도 부족하기만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는 것도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많이 드렸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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