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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7일







[행17:16-34]

16 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17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18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

19 그를 붙들어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

20 네가 어떤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21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22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27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29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32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33 이에 바울이 그들 가운데서 떠나매

34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바울이 그리스의 아덴에 갔습니다. 아덴의 큰 광장에서 사람들을 볼 때 그들이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아덴에서 태어난 사람이나 외국에서 들어온 사람들이나 할 것 없이 새로된 것을 말하는 일 외에는 달리 시간을 보내는 일이 없다고 합니다. 그들은 새로운 지식, 세상의 지혜를 추구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직면한 그 시대는 두가지 큰 철학적 사조가 있습니다. 에피쿠로스 학파 사람들, 즉 에피큐리안(Epicurean)들과 스토아 학파 사람들, 스토익(Stoic)들 입니다. 이 둘은 당시의 대표적인 학파였습니다. 에피큐리안들은 모든 것이 원자들의 우연한 합류로 생기게 되었고, 사람을 포함한 생물이 죽으면 영혼을 구성하고 있는 원자들은 즉시 흩어지고 모든 감각은 중지된다고 보면서 철저하게 유물론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신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인간의 일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고, 또 아무런 영향력도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무신론에 가까운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은 우연히 이루어졌기 때문에 죽음 이후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쾌락을 좇고, 고통이나 두려움이 없는 평온한 삶과 향락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상태를 그들은 아타락시아(atharaxia)라고 불렀습니다. 

반면에 금욕주의자라 불리는 스토익들은 모든 것이 신이라는 범신론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운명에 의해 이루어지고, 인간의 운명도 결정이 되어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운명은 거역할 수 없기 때문에 거기에 복종해야 한다는 숙명론적인 입장을 취하며, 개인훈련과 절제를 강조했습니다. 한마디로 에피큐리안들은 Enjoy life(인생을 즐기는 것)이고, 스토익들은 Endure life(인생을 인내하는 것)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완전히 다른 두 철학 사상이 아덴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서로 새로운 논리와 새로운 관점으로 사람들을 현혹했고, 사람들은 무엇이 새로운가 하여 매일 같이 그것을 쫓는 일에 열중했습니다. 현대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요? 우리의 관심은 어디에 있나요? 우리는 새로운 것을 갖지 못하면, 알지 못하면 시대에 뒤 떨어진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개발하고 발견하지 않으면 사회에서 낙오되는 것이 세상의 논리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떻게 가르칩니까? 해 아래 새것이 없다고 가르칩니다. 새로운 것으로 우리의 이성을 자극할 수 있고, 우리의 본성을 자극하여 흥미를 느낄 수 있게 하지만, 이미 모든 것은 새것이 아니라고 선언합니다. 아무리 우리가 새것을 추구해봐도 세상의 어떤 것도 우리를 새것으로 만들 수 없고 만족 시킬 수 없다는 선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전심전력으로 추구해야 할 것은 새로운 사실들이 아니라 우리안에 있는 진리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생각, 새로운 문명으로부터 새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진리 안에서 내 자신이 발견되어 질 때 내 자신이 새로워 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1서 1: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사야 40:21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 태초부터 너희에게 전하지 아니하였느냐 땅의 기초가 창조될 때부터 너희가 깨닫지 못하였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이 세상을 살아 가나요? 어떤 논리가 여러분의 삶을 지배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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