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2024년 6월 5일








[행16:16-40]

16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17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18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19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 갔다가

20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21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22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23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24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28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29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30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32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33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34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35 날이 새매 상관들이 부하를 보내어 이 사람들을 놓으라 하니

36 간수가 그 말대로 바울에게 말하되 상관들이 사람을 보내어 너희를 놓으라 하였으니 이제는 나가서 평안히 가라 하거늘

37 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내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그들이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 한대

38 부하들이 이 말을 상관들에게 보고하니 그들이 로마 사람이라 하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39 와서 권하여 데리고 나가 그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니

40 두 사람이 옥에서 나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 보고 위로하고 가니라



오늘 본문에 보면 두려움에 쌓여 있는 세 종류의 사람과 두려움이 없는 사람들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귀신들린 여종의 주인들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 입니다.  그 성에 귀신들인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 귀신들린 자는 점을 잘 보았습니다. (귀신이 과거는 잘 마추거든요..) 근데 그 귀신들인 여자가 바울을 봤습니다. 바울을 보니까 범상치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매일 같이 그들을 찾아와서 큰 소리로 말합니다. “이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실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귀신들린 여자는 거짓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사역하는 것을 방해하는 행동입니다. 

사도바울은 참았습니다. 성경에 보면 여러 날을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다 바울이 심히 괴로워 합니다. 그리고 그에게 이르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왔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 귀신들린 여인을 종으로 삼아 돈을 벌고 있었던 주인들이 자기의 이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두려웠습니다. 성경에는 두려워했다는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앞으로 살길이 막막했을 것입니다. 그 여인들은 그들의 든든한 돈줄이었는데, 그들의 수입원이었는데 하루아침에 자신들의 살길이 막막해 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도 바울과 실라를 잡아서 관원들에게 끌고 가고 거짓으로 이 사람들이 성을 소란케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행치도 못할 도를 가르친다고 고발하게 됩니다.  


둘째로 두려움에 빠진 자는 감옥의 간수였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옥에 갇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그때 홀연히 큰 지진이 일어나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다 열렸습니다.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졌습니다.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알고 두려워했습니다. 두려워한 나머지 그가 취한 행동은 무엇입니까? 자결 하려 합니다. 자신들이 지키지 못한 죄수들로 인하여 문책을 두려워하여 자결을 결심하는 사람들입니다. 두번째 경우의 두려움은 어떤 두려움입니까? 자기의 실수가 너무도 과중해서 현실을 도피 하고 싶을 때 일어나는 두려움이고 그 결과로 자살 까지 하려는 극한 경우입니다. 자기의 실수로 인하여 받아야 하는 문책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셋째 두려움에 싸인 사람은 38절에 나옵니다. 아전들이 이 말로 상관들에게 고하니 저희가 로마 사람이라 하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16장을 이끌고 있는 사건의 축가운데 하나는 바로 그당시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던 로마입니다. 사도바울은 로마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빌립보는 12절에 보면 로마의 식민지라고 말씀합니다. 이 당시 식민지 나라에서는 로마 사람을 함부로 재판 할 수 있는 권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21절에 로마 사람이라고 말하는 귀신들린 여종의 주인들이 항소하므로 바울과 실라에게는 변론의 기회도 없이 옷을 찢어 버리고 매로 쳤습니다. 그리고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들이 잡아 넣은 사람도 로마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상전들은 식민지 사람으로 격어야 했던 애환을 격고 있습니다. 누구의 눈치를 봐야 하는지, 세상의 눈치를 보고 있는 사람의 두려움이 그 안에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세상의 권력에 휩쓸릴 때 우리는 두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한가지만 말씀드립니다. 이세상의 어떠한 것도 우리를 구원할 수 없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의 구세주 되신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앞에 내가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내안에 구세주로 모실 때 근원적인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고 영혼의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 14:27)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것, 성령 하나님의 내주하심을 두려움 극복의 방법으로 삼는 것은 어떻게 보면 너무도 소극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복잡하고, 어지러운 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단 한가지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안이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안식뿐입니다.  

16장에서 두려움을 극복한 바울과 실라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처지를 한번 보십시오. 귀신들린 여자를 고쳐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빌미가 되어 성을 소란케 했다는 모함을 받았습니다. 끌려가 매를 맞았습니다. 감옥에 갇혔습니다.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한 행동을 보십시오.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미합니다. 선교사니까 당연히 그렇게 해야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평안을 얻고 죽음이 앞에 있을 지라도 그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도와 찬양으로 그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그들 가운데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마음과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어떤 두려움이 여러분 주위를 맴돌고 있는지요? 어려운 상황을 미리 예측하고 그것을 준비하는 것은 두려움이 아닙니다. 그러나 두려움에 사로 잡히는 것은 우리를 파괴시킵니다. 갑자기 닥친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습니까? 그것이 참지 못할 두려움으로 작용해서 혹시 주위사람을 모함하고 주위 사람 탓으로 돌파구를 찾지 않으신가요? 나는 사람을 잘못 만났다. 너 때문에 내가 이런 어려움을 격는 다고 하면서 자신의 두려움을 극복하려 하지 않는지요? 혹시 예수님 만나기 직전의 간수처럼 어떤 일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해서 겪는 두려움이 있습니까? 또, 상관들처럼 주변의 눈치 때문에 두려워 하고 있습니까?  



Comment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