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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18일





2024년 6월 18일 


[행21:37-40]

37 바울을 데리고 영내로 들어가려 할 그 때에 바울이 천부장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냐 이르되 네가 헬라 말을 아느냐

38 그러면 네가 이전에 소요를 일으켜 자객 사천 명을 거느리고 광야로 가던 애굽인이 아니냐

39 바울이 이르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 시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하니

40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매우 조용히 한 후에 히브리 말로 말하니라

[행22:1-11]

1 부형들아 내가 지금 여러분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2 그들이 그가 히브리 말로 말함을 듣고 더욱 조용한지라 이어 이르되

3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4 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5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그들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

6 가는 중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7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8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9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에게 말씀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10 내가 이르되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네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11 나는 그 빛의 광채로 말미암아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


오늘 본문은 바울이 천부장에게 유대인들을 향하여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그들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증거하는 내용입니다. 


바울은 먼저 그들을 향해 “부형들아”라고 부르면서 시작합니다. 부형은 “사람들, 형제들, 그리고 아버지들”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자신과 청중들과의 동질성을 부각하면서 상대방을 높여 부르는 정중한 호칭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 앞에 서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들을 향한 분노가 있었을 수도 있지만, 그는 결코 분노를 표현하지 않고 끝까지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기 때문에 존경의 의미를 담은 표현으로 그들을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어서 자신의 출신에 대해서 소개합니다. 자신은 유대인으로서 길리기아 다소에서 출생하였고,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철저하게 율법 교육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이러한 소개는 단순한 자랑이 아닙니다. 바울은 자신도 전에는 그들과 같이 율법에 열심이었던 사람이었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심지어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결박하고 죽이기까지 했던 사람이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 예수님을 만났다고 말합니다. 그가 소리를 듣기를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라는 음성이었습니다. 바울이 엎드려 “주님 누구시니이까”라고 할 때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는 음성을 듣게 됩니다. 이후에 바울은 빛의 광채로 볼 수 없게 되어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바울의 태도를 묵상해 봅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에 의해 거의 맞아 죽을 뻔 했습니다. 천부장이 출동하여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한 상태입니다. 나라면 이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저는 일단 몸을 피할 것이고, 폭력을 행한 사람들을 비난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들 앞에 다시 서기를 원했고, 그들에게 가장 부드럽고 강력한 말로 자신의 말을 시작한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이런 태도를 보일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비난 앞에서 친절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폭력 앞에서 이성을 잃게 됩니다. 하지만 바울은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을 어느 상황에서도 전하고자 하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행동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믿음을 표현하고 복음을 증거할 좋은 기회를 기다리고 있습니까? 우리에게 좋은 기회는 찾아오지 않습니다. 그 기회는 내가 만들어야 합니다. 오늘 그 기회를 붙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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