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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17일




2024년 6월 17일 


[행21:17-36]

17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

18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

19 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말하니

20 그들이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바울더러 이르되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성을 가진 자라

21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 또 관습을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그들이 들었도다

22 그러면 어찌할꼬 그들이 필연 그대가 온 것을 들으리니

23 우리가 말하는 이대로 하라 서원한 네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

24 그들을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그들을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 대하여 들은 것이 사실이 아니고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

25 주를 믿는 이방인에게는 우리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할 것을 결의하고 편지하였느니라 하니

26 바울이 이 사람들을 데리고 이튿날 그들과 함께 결례를 행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각 사람을 위하여 제사 드릴 때까지의 결례 기간이 만기된 것을 신고하니라

27 그 이레가 거의 차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

28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곳을 비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 하니

29 이는 그들이 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시내에 있음을 보고 바울이 그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로 생각함이러라

30 온 성이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와 모여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니 문들이 곧 닫히더라

31 그들이 그를 죽이려 할 때에 온 예루살렘이 요란하다는 소문이 군대의 천부장에게 들리매

32 그가 급히 군인들과 백부장들을 거느리고 달려 내려가니 그들이 천부장과 군인들을 보고 바울 치기를 그치는지라

33 이에 천부장이 가까이 가서 바울을 잡아 두 쇠사슬로 결박하라 명하고 그가 누구이며 그가 무슨 일을 하였느냐 물으니

34 무리 가운데서 어떤 이는 이런 말로, 어떤 이는 저런 말로 소리 치거늘 천부장이 소동으로 말미암아 진상을 알 수 없어 그를 영내로 데려가라 명하니라

35 바울이 층대에 이를 때에 무리의 폭행으로 말미암아 군사들에게 들려가니

36 이는 백성의 무리가 그를 없이하자고 외치며 따라 감이러라


바울은 드디어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형제들이 바울 일행을 영접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하루도 쉴 틈 없이 이튿날 예루살렘 교회로 갑니다. 그곳에는 예수의 형제 야고보와 장로들이 있었습니다. 그들과 문안 인사를 나눈후 그동안 선교여행에서 있었던 일들을 나눕니다. 그들은 바울을 통해 일어난 큰 일들을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런데, 이 기쁨도 잠시, 곧이어 바울에게 민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이 일은 바울의 사역이 이방인들을 향한 것에 대한 것입니다. 이는 유대인들에게 불편한 구석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에 대한 바울과 유대인들의 시각 차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선교여행 당시 이방 지역에서는 율법으로 구원을 얻으려는 잘못된 사상이 도처에 퍼져 있었기에 바울은 그것을 바로 잡아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구원’과 연관된 진리에 있어서 만큼은 아주 명확했으며 냉철했습니다. 그런데 구원에 반하는 진리에 대해서는 아주 과감하게 비판했다면, 할례나 음식법과 같은 것들은 다소 가치중립적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그의 입장은 유대인들에게는 모세를 배반한 행동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 것입니다. 이에 교회공동체는 바울에 대한 강성한 유대인들의 마음을 달래줄 방법을 바울에게 제시합니다. 즉, 나실인 규정으로 인해 머리를 밀지 않은 자들이 공동체 안에 넷이 있는데, 얼마 후 서원기간이 끝나는 때를 맞춰 그들을 데리고 머리를 깎으러 함께 동행 할 것을 권한 것입니다. 당시 나실인은 혼자 머리를 깎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동역자 일인과 함께 특정한 장소에서, 특정한 규례를 지키며 진행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에게 있어 특정한 동역자가 되어 율법을 지키는 모습을 대외적으로 보여주라고 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바울에 대한 유대인들의 생각들이 조금은 수그러들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평소와는 다른 태도로 공동체의 권면을 그대로 따르겠다고 합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보여준 바울의 태도에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누구보다 진리에 있어서 타협을 보지 않는 바울은 공동체의 이같은 권면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울은 선교여행 내내 유대인들의 율법관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해왔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26절과 같이 그 권면 그대로 행동에 옮겼습니다. 바울은 왜 그렇게 행동한 것일까요? 이에 대한 답은 앞서 예루살렘에 오기 전에 그가 했던 기도와 결단을 먼저 생각해봐야 합니다. 사도행전 20:23-24를 보면 성령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가면 큰 환난이 있을 것이라고 바울에게 미리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려했던 이유는 단 하나,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런 각오를 가지고 예루살렘에 왔더니 교회공동체에서 하는 말은 고작 사람들의 비위를 맞춰 주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입장에서 얼마나 허탈한 상황입니까? 이방 땅에서 그렇게 반대했던 율법관에 따른 행동을 지금 자신보고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아무 말 없이 교회공동체의 권면을 따릅니다. 그는 유대인들이 두려워서 그랬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바울은 오직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비록 지금 당장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들이 마냥 내키지 않을지라도 자신이 기꺼이 유대인이 되어 그들에게 다가가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고전 9:20).

다만 이 과정 가운데 결코 놓치지 말아야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비록 겉으로 드러나는 모양은 바울이 유대인들의 율법을 따른 것이지만 그에게 있어 분명한 ‘신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진리’에 있어서는 결코 물러서지 않지만, 그 외의 것은 내어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의 서신서에서 명확하게 언급되었습니다. 구원은 율법을 지킴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그 믿음에 의한 것임을 그는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롬 1:16-17). 그러나 할례나 음식에 관한 것들은 가치중립적으로 여겼습니다(롬 14:2-6). 심지어 그는 자신의 행위로 누군가 실족하게 될 것을 우려해 고기조차 먹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고전 8:13). 이것이 바로 복음을 향한 바울의 신념이자 삶 그 자체였다. 바울은 진리에 있어 지켜야할 선이 분명하게 있으면서, 동시에 그 이외의 것은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넉넉함을 가진 자였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지켜야 할 것은 분명히 지키고 있습니까? 우리는 본질에 있어서는 결코 물러서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목숨걸고 지켜야 합니다. 하지만, 비 본질적인 것에 대해서는 양보할 수 있는 미덕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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