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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12일






[행19:21-41]

21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22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 동안 더 있으니라

23 그 때쯤 되어 이 도로 말미암아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24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은으로 아데미의 신상 모형을 만들어 직공들에게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25 그가 그 직공들과 그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풍족한 생활이 이 생업에 있는데

26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27 우리의 이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 당하게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2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분노가 가득하여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29 온 시내가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가는지라

30 바울이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하나 제자들이 말리고

31 또 아시아 관리 중에 바울의 친구된 어떤 이들이 그에게 통지하여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 권하더라

32 사람들이 외쳐 어떤 이는 이런 말을, 어떤 이는 저런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

33 유대인들이 무리 가운데서 알렉산더를 권하여 앞으로 밀어내니 알렉산더가 손짓하며 백성에게 변명하려 하나

34 그들은 그가 유대인인 줄 알고 다 한 소리로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기를 두 시간이나 하더니

35 서기장이 무리를 진정시키고 이르되 에베소 사람들아 에베소 시가 큰 아데미와 제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신전지기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36 이 일이 그렇지 않다 할 수 없으니 너희가 가만히 있어서 무엇이든지 경솔히 아니하여야 하리라

37 신전의 물건을 도둑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비방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을 너희가 붙잡아 왔으니

38 만일 데메드리오와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에게 고발할 것이 있으면 재판 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피차 고소할 것이요

39 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면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정할지라

40 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이 일에 우리가 소요 사건으로 책망 받을 위험이 있고 우리는 이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자료가 없다 하고

41 이에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니라


2년동안 성경 공부한 에베소 지역에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24절에 보면 데메드리오라고 불리우는 은 세공인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은으로 아데미 여신의 신전 모형을 만드는 사람이었고, 그는 이 일로 직공들에게도 많은 돈을 벌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 지역 사람들이 복음을 전해 들으면서 사람이 만든 우상을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의 사업이 명성을 잃게 될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사업이 망하게 될 처지에 놓여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데메드리오는 사람들을 선동하고, 바울과 가이오 아리스다고를 붙잡아 극장으로 몰려가게 되는 격한 상황을 연출하게 됩니다. 

예수믿는 사람들이 늘어났을 때 그 지역의 경제적인 상황이 변화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늘어났을 때 우상을 만들어 팔던 사람들이 삶에 위협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늘어났을 때 사회는 긴장해야 합니다. 사회는 변화를 느껴야만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숫자, 교인의 숫자는 늘어나는데, 사회의 부조리도 함께 늘어나고, 술집이나, 음란한 영업을 하는 업소들이 함께 늘어나는 것은 교회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책임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주권이 선포되어지고 하나님의 정의로우심, 하나님의 공의, 하나님의 사랑이 실현 되는 세상이 되도록 여러분이 사용되어져야 한다는 사실에 책임을 느끼고 계시는지요? 

달라스 윌라드가 지은 하나님의 모략이라는 책에 보면 ‘바코드 신앙’이라는 제목의 단락이 나옵니다. 대부분의 상점에서 물건에 붙여 사용하는 바코드를 여러분은 잘 아실 것입니다. 저는 어떤 원리에서 스캐너가 바코드에 반응하는 지 잘 알지는 못합니다. 그저 신기한 것은 스캐너는 다른 문자에 반응하지 않고 바코드에만 반응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단점이 있습니다. 바코드가 붙어있는 병이나 상자의 내용물이 무엇이며 바코드가 제 물건에 ‘제대로’ 붙어 있는지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계산기는 전자 감식안을 통해 바코드에만 반응할 뿐 그 외의 것은 일절 무시됩니다. 따라서, 아이스크림 바코드가 개 음식에 붙어 있다면 바코드의 견지에서 보는 한, 개 음식이 곧 아이스크림이 됩니다. 음식물의 내용물이 어떻게 담겨져 있고, 어떤 상태에 있는지 스캐너는 알지 못하고 바코드를 통해서 읽어들인 정보를 통해서 물건을 판단합니다. 

달라스 윌라드는 마치 바코드가 스캐너에 영향을 미치듯 요즘 우리가 생각하는 신앙생활은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떤 의식, 어떤 신념 혹은 어떤 단체에의 소속등이 하나님께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여러분이 어떤 신조에 정신적으로 동의한 순간이나 어떤 교회에 들어가 등록한 순간 하나님의 ‘스캐너’는 그것을 감지하고, 곧이어 용서가 흘러나 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적당량의 의가 그리스도의 구좌에서 천국은행의 우리의 구좌로 이체되면서 우리의 모든 빚이 탕감되는 신앙을 갖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내가 어떤 관계를 맺고있고,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어떤 삶을 사는지, 그 내용물의 상태는 별 상관 없이 말이죠. 이러한 바코드 신앙은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내용물과는 상관 없는 바코드가 붙어있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한 유명한 목사는 이렇게 개탄합니다. “오늘날 교회는 왜 이렇게 약한가? 회심자와 등록 교인은 많이 내 놓지만 왜 문화에 미치는 힘은 갈수록 약해지는가? 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과 구별이 안되는가?” 기독교 문화가 발달한 미국의 목사가 이런 말 했는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사회속에서 그리스도인의 힘을 느끼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기쁨을 누리시나요? 마음은 원하는데, 몸이 따라가지 않는 경우도 있고, 몸은 교회에 왔는데, 마음은 세상에 가있는 경우도 허다 합니다. 

우리는 교회 다닌다는 이유로 핍박 받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종교의 자유가 우리 앞에 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 드리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는 자유를 빼앗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신앙고백이 우리의 삶 전체를 변화시키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에베소 교인들이 지역 경제를 변화 시켰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 어떤 변화를 줄 수 있는지 스스로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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