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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10일





[행18:24-28]

24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25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27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28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

[행19:1-7]

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2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3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

4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5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7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오늘 본문은 바울이 에베소에서 사역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에베소지역은 바울 이전에 아볼로라는 사람이 회당에서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전한 복음은 완전한 복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학문이 많았고, 성경에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예수에 관하여 알고 있었고, 예수에 대해서 자세히 말하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는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는 있었지만 예수님을 알지는 못했습니다. 말장난 같지만 상당히 다른 말입니다. 성경에서 안다라고 이야기 할 때는 친밀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면에 누구에 관하여 말한다고 하는 것은 사전적 의미로 지식적으로 아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에 관하여 구약 성경을 통해 알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소식을 들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이유, 예수님이 돌아가신 이유, 예수님이 부활하신 사실 까지도 알았을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에 대해서 알수는 있었지만, 예수님을 체험하지 못했고, 경험적으로 관계적으로 알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18장 25절에 보면 그가 예수를 아는 것은 경험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지식적으로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했다고 합니다. 

예수를 경험하지 못한 그가 가르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요한의 침례였습니다. 

마가복음 1장 4절에 보면 “침례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침례를 전파하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침례를 받더라” 요한의 침례는 자기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침례입니다. (Repent) 아볼로는 자신의 죄를 자복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인도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몰랐던 사실은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가슴을 치고 통회하며 뉘우친다고 해서 그가 곧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신앙은 자기의 죄를 깨닫고 회개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그 죄를 용서하시고 또 받아주시는 예수를 나의 그리스도 곧 구세주(주님)로 믿고 영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예수님과 살아있는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약속하신 말씀대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질 수 있는 특권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Born Again 해야 하고, Renew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Repent와 함께 Renew 된 삶, 새로운 삶의 특권을 누리는 것이 신앙 생활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인들 중에도 신약성경이 말하는 의미에서의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 즉 요한의 침례만을 알았지만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형식상 물로 침례는 받았지만 성령께서 우리 마음 속에 거하심과 우리를 변화시키는 역사에 대하여 전적으로 무지한 기독교인들이 아직도 많이 있습니다. 메튜 헨리는 "아무 목적없이 침례를 받고 이로써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고 성령을 받지도 않았으며 성령에 복종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를 다시 베풀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는 것은 단순히 내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진정으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세상을 이기며 살겠다는 신앙 고백인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바울은 그들에게 안수를 합니다. 이때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여 그들이 방언도 하고 예언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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