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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27일





[행12:1-25]

1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3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4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6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7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8 천사가 이르되 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이르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한대

9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가 하는 것이 생시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10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지라 나와서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11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르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13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로데라 하는 여자 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14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

15 그들이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여자 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그들이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16 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그들이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라는지라

17 베드로가 그들에게 손짓하여 조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

18 날이 새매 군인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적지 않게 소동하니

19 헤롯이 그를 찾아도 보지 못하매 파수꾼들을 심문하고 죽이라 명하니라 헤롯이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머무니라

20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니 그들의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먹는 까닭에 한마음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설득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21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니

22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

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24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25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하는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



오늘 본문의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왕은 헤롯 아그립바 1세로 이두매인이었습니다. (이두매인은 에서의 후예들인 에돔 사람들을 이야기 합니다. 그는 로마 황제의 신임을 얻어 유대인의 왕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유대인의 왕이 되었지만, 정작 그는 유대인의 지지를 전혀 얻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사도 야고보를 참수형에 처했습니다. 야고보의 참수형이 자신이 예상했던 대로 유대인들이 그 일을 몹시 기뻐하는 것을 확인한 헤롯은 내친 김에 베드로까지 투옥시켜 버렸습니다. 베드로의 목마저 공개적으로 베어버림으로 유대인들의 마음을 확실하게 사로잡아, 이두매인인 자기의 왕권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바로 죽일 수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최고의 명절인 무교절이 이미 시작되었기 때문에 베드로의 죽음은 그 절기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초대 교회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것은 일대 위기의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역사의 기록에 의하면 헤롯 아그립바 1세는 주후 41년부터 44년까지 3년동안 유대인의 왕으로 군림하였습니다. 따라서 본문의 시기는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시고 교회가 생긴지 불과 10여년에 밖에 되지 않았을 때 입니다. 교회가 이 땅에 뿌리를 내리기에는 아직 턱없이 부족한 때 입니다. 그런데, 야고보 사도가 이미 참수형을 당했을 뿐 아니라, 베드로 또한 참수형을 당할 처지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 위기의 상황에 교회가 무엇을 했었는지 본문 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초대 교회는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여기서 간절하다는 말은 “엑테네스”라는 단어로 손을 내 뻗거나 혹은 잡아 당기는 모습을 묘사하는 단어입니다.   

교인들의 간절한 기도 때문이었을 까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두 군사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자던 베드로의 쇠사슬이 벗어 졌습니다. 그리고 첫째, 둘째 파수를 지났습니다. 쇠문이 있었는데 그 문이 저절로 열렸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너무도 환상적이어서 그랬는지 베드로 스스로 현실감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11절에 보면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났고, 일이 다 진행 되고서야 베드로는 천사를 보내어 구출하셨음을 깨달았습니다. 깨달음과 동시에 베드로는 마가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소유하고 있던 집으로 갔습니다. 이 집은 초대 교회 교인들이 함께 모여 예배와 기도처소로 사용하던 장소들 중의 한 곳이었습니다. 베드로가 그 집 앞에 당도하는 순간에도 베드로의 구출 사실을 알지 못하는 교인들은 여전히 집안에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베드로의 생명을 구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처럼 베드로를 위해 교인들이 쉬지 않고 기도하고 있었기에, 주님께서 베드로를 참수형 직전에 구해 내신 것은, 베드로를 위한 초대교회 교인들의 간절한 기도에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여기서 사건의 이야기를 끝낸 것이 아니라 좀더 자세하게 이 사건을 다룸으로써 초대 교회 교인들의 간절히 한 기도에 대해 의문을 던져 줍니다.  

13-16절을 읽겠습니다.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로데라 하는 계집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베드로의 음성인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밖에 섰더라 하니 저희가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계집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저희가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저희가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라는 지라.” 


교인들이 여전히 자신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마가의 집에 베드로가 왔습니다. 대문을 열러 나왔던 그 집 여종 로데가 문밖에서 들리는 음성의 주인공이 베드로임을 알자마자 너무도 기뻐 문을 여는 것을 미쳐 잊어버리고 그냥 집안으로 달려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반응은 전혀 예상과 달랐습니다. 여종을 미쳤다고 하고, 그것은 베드로가 아니라 베드로를 지켜주는 천사라고 말합니다. 옛날 유대인들은 각 사람에겐 수호 천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문밖에 베드로의 천사가 와있고 생각한 것은 베드로가 이미 참수 형을 당해 죽었기 때문에 베드로의 실체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들은 기도를 하고 있었지만, 베드로가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기도했고,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그들은 억울하게 투옥 당하여 참수 형을 당할 처지에 있던 베드로를 살려달라고 손을 뻗으며, 간절하게 기도했던 사람들 아닙니까? 그렇다면 살아 돌아온 베드로를 누구 보다 도 간절하게 반겨야 할 것임에도 아니, 문 앞 보초를 세워두고 베드로가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베드로의 귀환을 의심했다는 것은, 그들이 베드로를 위해 간절하게 기도하기는 했으되,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고 기도하지 않았다는 믿음 없는 기도였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까? (어떤 목사님은 이런 기도는 자기 만족의 행위이고, 주술행위에 불과했다고 극단적으로까지 말씀합니다.) 

왜 이런 행동이 나타난 것일까요? 기도 응답에 대한 잘못된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누구든지 언제든지 열심히 기도하면 무엇이든 응답해 주신다고 믿고 기도합니다. 물론 열심히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해 주신다는 명제는 거짓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자녀들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 상황에 맞는 기도 응답만 원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응답 방법은 무엇입니까? “즉각적인 응답” “기다림” “거절”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즉각적인, 그리고 내 방식대로의 응답”만을 요구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노”를 선포 하셨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끝까지 내 뜻을 관철시키려 합니다. 그래서 기도가 주술적 행위가 되어버립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이 생각했던 베드로의 구출 방법은 지극히 인간적인 과정이었을 것입니다. 변호사를 선임하고, 재판을 하는 과정을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헤롯 아그립바 1세가 재판없이 야고보 처럼 바로 처형할 태세였기 때문에 인간적인 생각과 방법으로는 베드로가 살아 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밤에 초 자연적인 힘으로 베드로를 구출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응답 방법을 초대 교인들은 받아드릴 믿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응답하십니다. 그러나, 내 생각과 내가 필요한 것으로만 응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따라서, 기도를 결과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기도는 결과를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기도는 삶의 방식입니다. (tool 이 아니라, way) 그렇기 때문에 기도를 하나님과의 대화라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열심히 새벽기도하고 철야기도 산기도 한다고 해서,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을 수 있습니다. 남편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특히 부모님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여러분의 기도가 가치가 없는 것일까요?  혹 어떤 기도제목은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응답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혹은 우리의 기도는 우리가 전혀 예기치 못한 결과를 초래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기도는 무용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무한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기도가 수단이 아니라 삶의 모습이어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열심을 내고, 더욱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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