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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1일





[행1:1-11]

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2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오늘부터 우리는 누가가 데오빌로에게 전한 두번째 편지인 사도행전을 함께 묵상합니다.

역사적으로 데오빌로가 누구였는지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누가는 누가복음에서 데오빌로에게 ‘각하’라는 호칭을 쓰고 있습니다. 당시 ‘각하’란 호칭은 총독 이상의 사람에게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더욱이 데오빌로란 이름은 그리스어 이름으로 유대인이 아닌 외국인으로 유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방인임이 분명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데오빌로가 각하라 불릴 정도라면, 그들을 통치하고 지배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누가가 데오빌로에게 존경의 의미를 담아서 편지를 쓸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누가는 자신이 경험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벅찬 감정으로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고, 권능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을 바라봤기 때문에 데오빌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데오빌로가 변화 되어가는 모습을 바라 보는 심정으로 방대한 복음서를 쓴 것입니다. 우리는 데오빌로가 정확하게 어떻게 변화 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에서 데오빌로 각하라는 극도의 사무적인 호칭을 썼지만, 사도행전에서 “데오빌로여”라고 부르며 더 이상 사무적인 관계가 아니라 형제관계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을 경험하고 권능을 체험한 누가의 헌신 적인 노력과 사랑이 데오빌로로 하여금 주안에서 한 형제가 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이렇게 변화되는 세상을 향한 사도들의 복음 전파 과정을 상세히 기록한 역사책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그들의 복음 전파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 출발점에 있었던 일들을 기록합니다.

저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두가지를 집중해서 생각해 봤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떠지 말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은 위험한 장소입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기 때문에 종교 지도자들과 로마 군인들이 제자들이 시신을 가져 갔다고 소문을 내며 그들을 잡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은 전국에서 뿐 아니라 세계에서 유월절을 지내기 위해 수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장소였기 때문에 복음을 증거하며 교회를 시작할 수 있는 가장 최적의 장소였기에 예수님은 그곳을 떠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4절에서 떠나지 말라는 말씀을 명령형으로 하지 않으셨습니다. 부정사를 사용하시며 마땅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당연하게 해야 할 일임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은 성령 침례입니다. 복음을 전해야 했던 제자들은 성령 충만함이 필요했습니다. 성령 충만함을 경험하기 위해서 그들이 해야 할 일은 함께 모여 기도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 또한 예수님은 부정사를 사용하시며 마땅히 해야 할 일임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예루살렘의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다리며 오로지 기도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기다렸을 때 성령이 임하여 권능을 받고 예수님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성령 충만함으로 예수님의 증인이 되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떠나지 말라 할 때 떠나지 않는 것, 기다리라고 할 때 기다리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도구가 되는 시작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도구가 되는 삶을 살고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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