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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27일






마가복음 14장 53-72절


53 그들이 예수를 끌고 대제사장에게로 가니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다 모이더라


54 베드로가 예수를 멀찍이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들어가서 아랫사람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더라


55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증거를 찾되 얻지 못하니


56 이는 예수를 쳐서 거짓 증언 하는 자가 많으나 그 증언이 서로 일치하지 못함이라


57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예수를 쳐서 거짓 증언 하여 이르되


58 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 동안에 지으리라 하더라 하되


59 그 증언도 서로 일치하지 않더라


60 대제사장이 가운데 일어서서 예수에게 물어 이르되 너는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이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 하되


61 침묵하고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거늘 대제사장이 다시 물어 이르되 네가 찬송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


6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63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우리가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64 그 신성모독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니 그들이 다 예수를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고


65 어떤 사람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며 이르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인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


66 베드로는 아랫뜰에 있더니 대제사장의 여종 하나가 와서


67 베드로가 불 쬐고 있는 것을 보고 주목하여 이르되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68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노라 하며 앞뜰로 나갈새


69 여종이 그를 보고 곁에 서 있는 자들에게 다시 이르되 이 사람은 그 도당이라 하되


70 또 부인하더라 조금 후에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 도당이니라


71 그러나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가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72 닭이 곧 두 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그 일을 생각하고 울었더라


오늘 본문에는 베드로와 예수님이 비교 대조되며 소개됩니다.


예수님은 피고인처럼 붙들려 대제사장에게 끌려가 대 제사장에게 심문을 당합니다. 심문당하는 방법은 거짓된 증인들의 증언으로 이뤄졌습니다. 많은 거짓 증언자들이 왔지만 결과가 신통치 않았는데, 어떤 사람들 이런 증언을 했습니다. “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 동안에 지으리라 하더라 하되” 고 했습니다. 하지만, 본문에 보면 그들의 증언이 서로 맞지 않다고 합니다. 그들이 고발한 말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맞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 말은 예수님이 성전을 물리적으로 파괴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을 빗대어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2장에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장면이 나옵니다.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 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님 말씀의 참 의미를 알지 못한다면 이 말은 유대인들을 열받게 하는 말입니다. 그들은 성전에 대한 자부심이었습니다. 46년간 열심히 지은 성전을 삼일 만에 세우겠다는 것은 화가 날 수 있는 말이지만, 이 말을 했다고 해서 죄인으로 취급하거나 사형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 예수님은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저 같으면 한마디 했을 것입니다.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소리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침묵했습니다. 침묵하신 이유는 당신은 앞으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것을 알았기 때문에 거짓 증언에 변명하고, 또 다른 증명을 하는 것은 무의미 하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침묵에 대 제사장은 힘을 얻었던 것 같습니다. 조목조목 따지며 변론을 할 줄 알았던 예수님이 마치 모든 죄를 인정하듯이 가만히 있는 모습에 대 제사장은 마지막 한방을 날립니다. “대제사장이 다시 물어 이르되 네가 찬송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 이 질문은 예수님의 정체성을 묻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은 이 질문 한방으로 예수님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아니다고 한다면 사람들에게 죄를 사해주었던 일들, 병자를 고치며 구원을 선포한 일들, 그리고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던 일들에 대해서 사이비 교주로 죄를 묻고 사형에 처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렇다고 말한다면 어떻게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고, 그리스도가 될 수 있냐며 신성을 모독했다는 죄목으로 예수님을 사형에 처할 수 있는 명분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짜피 이들은 당신을 죽일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입을 열어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예수님은 그렇다, 아니다를 말씀하셨을 뿐 아니라, 한 발 더 나아가 아주 확실하게 재림할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대제사장은 예수님의 죄목을 신성모독으로 확정하고 예수님에게 사형을 선고합니다.


예수님은 거짓 증언에 대해서 침묵하셨습니다. 그러나 무조건 묵비권을 행사한 것은 아닙니다. 말씀하실 때는 그 말씀이 죽음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할지라도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예수님은 뺨을 맞기 시작하고, 조롱 당할 것을 알면서도 진실을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또 한명이 등장합니다.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잡혀간 예수님이 걱정되었습니다. 대제사장 집 바깥 뜰에 자리 잡고 앉아 불을 쬐면서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때 대제사장의 여종이 베드로를 보고 이 사람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여종의 말로 베드로를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감람산에서 예수님을 체포할 때 그들은 제자들은 그냥 두었습니다. 만일 체포하려 했으면 그때 같이 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사람들이 두려웠습니다. 죄인으로 잡혀간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는 것을 주변 사람들이 알아볼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 말은… 그 자신도 예수님이 혹시 죄인 아닌가? 라는 의심을 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확신한다면 그의 태도는 달랐을 것입니다. 네! 저는 저 갈릴리 예수와 함께 있던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이 아닙니다. 라며 당당히 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합니다. 사실 사람들은 베드로에게 그리 관심이 없습니다. 혼자 찔려서 그 자리에 있지 못하고 조금 옮깁니다. 이때 다른 여종이 말합니다.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던 사람입니다. 이제 베드로는 한걸음 더 나아갑니다. 맹세하고 부인합니다. 무슨 소리입니까? 나는 그를 알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맹세까지 하는 베드로에게 더 이상 묻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맹세가 효과를 발휘했다고 생각했는지 안심하며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바로 옆에 있던 사람이 베드로가 하는 말을 듣더니 갈릴리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이렇게 말합니다. “너도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 도당이니라” 갈릴리 억양을 쓰던 베드로가 들통이 난 것입니다. 그는 두려웠습니다. 모든 것이 들통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실까요???? 베드로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가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베드로는 결국 하지 말아야 말을 했습니다. 내가 예수를 믿는 사람이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는 표현을 한 것입니다. 결단코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내가 저주를 받겠다고 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순간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내 안에 예수님이 주인으로 좌정하고 있습니까? 예수님 잠시만 그 자리에서 내려와 주시겠습니까? 이 말은, 이 생각은, 이 행동은 내가 마음대로 하겠습니다. 내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모른척하며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예수님이라면 어떤 말과 행동을 했을까? 내가 너무 잘 아는 이야기고, 내가 전문가라 할지라도 이 상황에서 예수님이라면 어떤 말과 행동을 했을까?를 생각하지 않고, 말과 행동을 하는 경우는 없는지요? 오히려 여러분은 누군가 총을 대며 네 종교가 무엇이냐?고 물을 때 자신있게 기독교입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님을 내 중심에서 밀어내고 나만 살려고, 내 뜻을 주장하려고 베드로처럼 살아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멀찍이…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멀찍이…라는 단어는 성경에 딱 세번 나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 단어의 헬라어는 마크로펜이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는 열 세번 나옵니다. 열 세번 중에 열번은 한국말로 ‘멀리’라는 단어로 번역했는데, 유독 베드로가 등장하는 이장면 - 마태복음 26, 마가 14, 누가 22장 - 에서만 ‘멀찍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왜 멀리라고 하지 않고 멀찍이라고 했는지 이상하지 않습니까? 어쩌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멀찍이라는 뉘앙스가.. 가까이 갈 수도 있는데, 의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베드로의 모습을 절묘하게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충문히 예수님을 가까이 쫓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의도적으로 두려움으로 멀찍이.. 떨어져 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언젠가 우리는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멀찍이 떨어져 가지 마시고, 가까이… 아주 가까이 예수님을 쫓아 가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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