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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13일






[막11:1-11] 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3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4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5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6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7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8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10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 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니라

오늘 본문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 가까이 감람산 벳바게에 이르렀다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두 제자를 보내며 말씀하십니다.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3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이 가서 예수의 명하신 대로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왔습니다. 이 사건은 다른 복음서보다 마가복음에 좀더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제자들이 가서 보니까 나귀 새끼가 문 앞에 매여져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아무 말 없이 나귀에게 갑니다. 그리고 그것을 풉니다. 그때 사람중 어떤 사람이… 가로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하려느냐…. 고 묻습니다. 마가복음 본문에는 어떤 사람이라고 나오는 부분이.. 누가복음에는 19장 33절에 나귀 새끼를 풀 때에 그 임자들이 가로되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 고 말합니다. 이 때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고 나귀를 가져 옵니다.

나귀가 왔을 때 제자들은 그 나귀 새끼에 안장을 지우고 예수님이 타게 하십니다. 그때 여러 사람들이 몰려 옵니다. 무리의 대부분은 그 겉옷을 길에 펴며 어떤 이는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지르며 노래합니다.

저는 이 광경을 생각할 때도 혼자 웃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새끼 나귀는 아직 아무 일도 해보지 않은 어리고 작은 동물입니다. 아마도 그 나귀는 어느 누구도 어린아이 아니면 타려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림이 어색합니다. 나귀가 힘들어 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새끼 나귀를 타셨습니다. 여기는 몇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예언을 성취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슥 9:9). 하나님이 예언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귀의 작은 것을 탈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은 순종하셨습니다.

둘째는 예수님은 겸손하셨기 때문입니다. 말은 왕이 타는 동물입니다. 특히 예루살렘에 들어오는 왕은 승리를 이끈 왕이 승전보를 알리며 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는 왕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왕이십니다. 그러나 세상의 방법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지 않으셨습니다. 우스꽝스러워도 그는 새끼 나귀를 타셨습니다.

셋째, 예수님은 평화를 위해 이땅에 오셨음을 알리기 위합니다. 말은 전쟁의 상징이고 나귀는 평화의 상징입니다. 나귀는 싸움터에서 사용 할 수 없습니다. 나귀는 말처럼 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빨리 다릴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나귀는 평상시 물건과 사람을 운반할 때 이용하는 수송용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폼 나지는 않지만 당신이 이땅에 오신 목적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일부러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것은 예수를 환호한 무리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를 왕으로 맞이했습니다. 옷을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예수님의 예루살렘 성으로의 입성을 열렬히 환영했습니다. 무리들은 자기들의 생각대로 예수님을 열렬히 환영하고 있었지만 예수님이 진정 어떤 분인가에는 완전히 무지했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도 살리셨고, 병든 자도 고치시고, 많은 기적을 행한 분으로 기억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야 말고 자신들을 이 힘든 세상에서 로마의 압박, 종교적인 타락, 가난에서 구원할 메시야, 왕 인줄 알았습니다. 여러분 왕인 줄 알았으면 끝까지 예수를 따라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무리의 모습은 순간적으로 변했습니다. 그들이 변질 되는 데는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후 끊임 없이 일어나는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정치적, 종교적 공격으로, 예수를 모함하고 예수를 죽이려 했을 때 무리들은 예수님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결국은 빌라도가 무리의 요구에 못이겨 예수를 내어주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했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어떻게 왜? 어떤 과정을 통해서,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 예수에게 등을 돌렸는지 알려 주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내 자신을 너무도 쉽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상태에 있습니까? 무엇 때문에 예수님을 찾으셨죠? 끝까지 변하지 않을 자신있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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