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3:1-5]
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 하시기로
2 내가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그를 사고
3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음행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따르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하였노라
4 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은 날 동안 왕도 없고 지도자도 없고 제사도 없고 주상도 없고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이 지내다가
5 그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와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들의 왕 다윗을 찾고 마지막 날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여호와와 그의 은총으로 나아가리라
호세아 3장의 말씀은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표현합니다. 미국의 신학자 가운데 제임스 몽고메리 보이스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분은 호세아서 3장을 가리켜서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장’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장을 꼽으라고 한다면 서슴지 않고 이 호세아서 3장을 선택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신학자는 호세아서 3장을 ‘구약의 요한복음 3장’이라고 했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장이 있다면 아마도 요한복음 3장 16절이 있는 요한복음 3장일 것입니다. 그런데 호세아서 3장의 내용이 요한복음 3장과 비슷합니다. 요한복음 3장의 절정은 16절인데 여러분 알고 있죠?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입니다. 모든 사랑의 극치,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대의 사랑은 십자가 사건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분의 사랑을 받을 만한 조건과 자격이 없는 우리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사랑이야 말로 사랑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호세아서 3장은 바로 십자가 사건의 그림자와 같은 사건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보여주신 구속적 사랑의 메시지가 상징적 필체를 통해 전달되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1절에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긴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다른 신을 섬기게 된 원인중의 하나가 건포도 과자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건포도 과자는 특식으로 가난할 때는 즐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건포도 과자는 특별한 축복을 상징하는데, 그들은 하나님을 포기하면 더 특별한 축복, 특별한 쾌락이 자신들에게 약속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긴다고 해도 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신다고 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입니다. 조건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상대방이 나를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 그것이 바로 헷세드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은 “내가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그를 사고”라고 하십니다. 값을 지불하고 산다는 것은 바로 구속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신을 섬기는 이스라엘을 사랑하셔서 그를 사셨습니다. 그런데 누구를 위해서 샀냐 하면 “나를 위하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사랑의 하나님은 그를 사지 않고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의 피 값으로 우리를 사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기고,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우리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사랑하시기로 예수님의 피 값을 지불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사랑을 베푸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의 삶이 변화되어 하나님을 닮기 원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3절에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음행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따르지 말라” 하십니다. 이는 다시 죄를 범하지 말고 거룩한 삶을 살라고 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은 그들을 징계하셨습니다. 4절에 보시면 그들이 징계 받은 역사의 흔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훈련을 통해서 하나님은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의 삶을 영위하기를 원하시며 5절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 그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와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들의 왕 다윗을 찾고 마지막 날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여호와와 그의 은총으로 나아가리라” 그 후에란 말은 훈련된 후, 깨끗해진 후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다윗을 찾는다고 하셨는데 다윗은 이미 지나간 옛 왕입니다. 따라서 이는 다윗 왕을 직접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분, 메시아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라고 봐야 합니다. 결국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놀라운 삶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할 뿐 아니라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며 주님과의 새로운 관계와 새로운 교제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참 사랑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랑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직도 세상이 주는 건포도 과자에 현혹되어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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