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1일
[호2:1-13]
1 너희 형제에게는 암미라 하고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라 하라
2 너희 어머니와 논쟁하고 논쟁하라 그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는 그의 남편이 아니라 그가 그의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게 하고 그 유방 사이에서 음행을 제하게 하라
3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그를 벌거벗겨서 그 나던 날과 같게 할 것이요 그로 광야 같이 되게 하며 마른 땅 같이 되게 하여 목말라 죽게 할 것이며
4 내가 그의 자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음란한 자식들임이니라
5 그들의 어머니는 음행하였고 그들을 임신했던 자는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나니 이는 그가 이르기를 나는 나를 사랑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그들이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음이라
6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그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
7 그가 그 사랑하는 자를 따라갈지라도 미치지 못하며 그들을 찾을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 그제야 그가 이르기를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 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하리라
8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그에게 준 것이요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그에게 더하여 준 것이거늘 그가 알지 못하도다
9 그러므로 내가 내 곡식을 그것이 익을 계절에 도로 찾으며 내가 내 새 포도주를 그것이 맛 들 시기에 도로 찾으며 또 그들의 벌거벗은 몸을 가릴 내 양털과 내 삼을 빼앗으리라
10 이제 내가 그 수치를 그 사랑하는 자의 눈 앞에 드러내리니 그를 내 손에서 건져낼 사람이 없으리라
11 내가 그의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폐하겠고
12 그가 전에 이르기를 이것은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내게 준 값이라 하던 그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를 거칠게 하여 수풀이 되게 하며 들짐승들에게 먹게 하리라
13 그가 귀고리와 패물로 장식하고 그가 사랑하는 자를 따라가서 나를 잊어버리고 향을 살라 바알들을 섬긴 시일대로 내가 그에게 벌을 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장을 시작하면서 호세아는 2절에 “너희 어미와 논쟁하고 논쟁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너희는 호세아의 자녀들입니다. 그리고 어미는 음녀 고멜입니다. 너희 어머니가 음행에 빠졌다. 그러므로 논쟁을 해서라도 어머니 자리를 바로 찾도록 너희들이 촉구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어머니는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은 “남은 자들”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순결을 지키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남은 자들인데 이들에게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머니 이스라엘을 돌이키게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녀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회복될 수 밖에 없는 과제 입니다. 하나님은 안타까운 심정으로 남은 자들을 향해서 ‘네 어머니를 설득하라, 촉구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안타까운 하나님의 마음이 그리고 결국 하나님의 마음 속에 있던 사랑이 이스라엘 민족을 다시 회복시키는 동력이 됩니다. 이런 회복의 스토리가 아름다운 상징의 언어로 2장에 표현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왜 이렇게 타락했을까요?
고멜이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를 따라간 이유는 5절에 본면 떡과 물과 양털과 기름과 술들을 준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것은 필수품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기름과 술은 당시에는 사치품에 가깝습니다. 그들은 필요에 의해 다른 남자를 따라간 것이 아니라 쾌락까지 만족시켜 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다른 남자, 즉 다른 신들을 섬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농사 짓는 민족이 아니라 유목 민족입니다. 그러나 가안땅에 정착하면서 농사 지을 필요가 생긴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농사에 대한 지식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가나안 원주민들에게 농사를 배우는데 가만히 보니까 그들은 농사를 지을 뿐 아니라 바알이라는 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바알을 풍요의 신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농사 짓는 기술만 배우면 괜찮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배후에 있는 무언가를 배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도록 해준다는 바알을 섬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기서부터 타락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필요가 아니라 풍요를, 풍요가 아니라 쾌락을 쫓기 시작한 것이죠.
한 신학자는 그들이 타락하는 과정을 세가지 단계로 표현했습니다. 첫째, 축복의 근원을 혼동한 것입니다. 고멜은 자신의 모든 필요를 만족시켜 주는 남자가 나타나자 즉시 밖을 향해서 달음질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도 마찬가지 입니다. 가나안 백성들이 ‘우리가 섬기는 바알 신이 모든 것을 제공한다’고 하자 솔깃해졌습니다. 이 소리를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대신 바알을 경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들은 축복의 근원을 혼동한 것입니다.
둘째, 축복의 근원을 망각한 것입니다. 8절에 보시면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그에게 준 것이요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그에게 더하여 준 것이거늘 그가 알지 못하도다”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축복의 근원을 잊어 버린 것을 한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른 대상을 향해 사랑을 옮기는 것입니다. 13절입니다. “그가 귀고리와 패물로 장식하고 그가 사랑하는 자를 따라가서 나를 잊어버리고 향을 살라 바알들을 섬긴 시일대로 내가 그에게 벌을 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연애하는 자를 따라가다가 남편을 완전히 잊는 단계까지 간 것입니다. 혹시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 삶의 근원, 우리 축복의 근원, 우리 존재의 근원을 망각한 채 하나님이 아닌 다른 대상으로 필요를 채우거나 하나님이 아닌 다른 데서 허영을 공급받으려는 이 시대 현대인들의 타락한 모습이 고멜의 모습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고멜의 모습으로 사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