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8일
[애5:11-22]
11 대적들이 시온에서 부녀들을, 유다 각 성읍에서 처녀들을 욕보였나이다
12 지도자들은 그들의 손에 매달리고 장로들의 얼굴도 존경을 받지 못하나이다
13 청년들이 맷돌을 지며 아이들이 나무를 지다가 엎드러지오며
14 노인들은 다시 성문에 앉지 못하며 청년들은 다시 노래하지 못하나이다
15 우리의 마음에는 기쁨이 그쳤고 우리의 춤은 변하여 슬픔이 되었사오며
16 우리의 머리에서는 면류관이 떨어졌사오니 오호라 우리의 범죄 때문이니이다
17 이러므로 우리의 마음이 피곤하고 이러므로 우리 눈들이 어두우며
18 시온 산이 황폐하여 여우가 그 안에서 노나이다
19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오며 주의 보좌는 대대에 이르나이다
20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잊으시오며 우리를 이같이 오래 버리시나이까
21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22 주께서 우리를 아주 버리셨사오며 우리에게 진노하심이 참으로 크시니이다
예레미야애가의 첫 단락에서부터 예루살렘 성의 곡소리와 탄식으로 시작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가 읽은 애가의 마지막 단락도 예루살렘 성내 백성들이 지금 당하는 고난에 대해 소개하면서 탄식으로 끝을 맺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영적 순결을 지키기 거절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에게 치욕을 당한 것을 소개합니다. 11-14절에는 대적들에 의해 치욕을 당하는 다양한 백성들의 모습이 나오는데, 11절에는 ‘부녀들과', ‘처녀들', 12절에는 ‘지도자들’과 ‘장로들', 13절에는 ‘청년들’과 ‘아이들’, 14절에는 ‘노인들’과 ‘청년들'이 등장하며 그들이 당하는 일들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15절부터는 이렇게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치욕을 당하며 멸망한 예루살렘은 모든 즐거움과 기쁨이 사라지고 짓누르는 듯한 절망과 고통만이 뒤덮고 있었습니다. 나라를 빼앗기고 이방인들에 의해 압제를 받고 있던 당시 아무런 기쁨이나 소망이 없이 절망과 고통의 상태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법도에 따라 살아갔던 삶의 질서는 파괴되었습니다. 선지자는 이러한 상황에 처한 예루살렘 사람들의 생각과 슬픔을 ‘마음에는 기쁨이 그쳤고 우리의 춤은 변하여 슬픔이 되었사오며’라고 표현합니다. ‘슬픔’은 ‘애곡’, ‘통곡’이라는 뜻으로 기쁨의 춤이 죽음을 애도하는 곡으로 바뀌었다는 의미입니다. 다음으로 ‘면류관이 떨어졌다’고 소개합니다. ‘면류관’은 왕과 같은 고귀함을 나타냅니다. 머리에서 면류관이 떨어졌다는 것은 유다 백성의 고귀함이 사라졌다는 뜻입니다. 유다 백성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부심으로 가득했었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 함락으로 그 명성과 자부심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선지자는 16절 하반절에서 탄식을 하며 모든 일의 원인이 자신들의 죄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선지자는 현실을 직시하였으며, 그 원인이 된 죄에 대해서도 회피하지 않고 인정합니다. 죄에 대한 인정이 비록 가슴 아프고 수치스럽지만, 결코 회피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현실과 죄를 직시할 수 있는 힘이 있었기에, 19절 이하에서 하나님께 돌이켜 달라고 간곡히 요청할 수 있었습니다. 선지자는 고난과 수치는 자신들의 죄에 따른 결과로서 하나님께 공의의 심판을 내리신 것은 정당하다고 고백합니다.
나아가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언약에 의지해 구원과 회복을 간구했습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리고 불순종했지만,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잊거나 파기하지 않으실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인도해 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인도에 전적으로 순종한다면,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 자신들에게 돌아와 달라고 간곡하게 요청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비심에 의지하여 자신들도 하나님께 돌아갈 것이며, 그렇게 되면 이전처럼 완전히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합니다. 이 표현은 철저히 하나님의 자비를 먼저 구하는 행동입니다.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가 있어야 그 은혜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갈 수 있고 회복될 수 있습니다.선지자는 전적으로 용서를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의지하여 끝까지 하나님을 붙잡고 희망을 품으려 합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을 위한 예레미야처럼 성도들도 본받아야 합니다. 멸망한 조국을 부여잡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당한 고난 속에서도 인내와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의 신앙에도 꼭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경우에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 성취되어 감을 믿고 하나님의 신뢰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레미야애가를 부른 선지자의 처절한 고통의 울부짖음이 오늘 우리에게 큰 위로와 희망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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