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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17일

작성자 사진: ncyeollinncyeollin



2024년 10월 17일 


[애1:1-11]

1 슬프다 이 성이여 전에는 사람들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하게 앉았는고 전에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이 되었고 전에는 열방 중에 공주였던 자가 이제는 강제 노동을 하는 자가 되었도다

2 밤에는 슬피 우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 사랑하던 자들 중에 그에게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들도 다 배반하여 원수들이 되었도다

3 유다는 환난과 많은 고난 가운데에 사로잡혀 갔도다 그가 열국 가운데에 거주하면서 쉴 곳을 얻지 못함이여 그를 핍박하는 모든 자들이 궁지에서 그를 뒤따라 잡았도다

4 시온의 도로들이 슬퍼함이여 절기를 지키려 나아가는 사람이 없음이로다 모든 성문들이 적막하며 제사장들이 탄식하며 처녀들이 근심하며 시온도 곤고를 받았도다

5 그의 대적들이 머리가 되고 그의 원수들이 형통함은 그의 죄가 많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곤고하게 하셨음이라 어린 자녀들이 대적에게 사로잡혔도다

6 딸 시온의 모든 영광이 떠나감이여 그의 지도자들은 꼴을 찾지 못한 사슴들처럼 뒤쫓는 자 앞에서 힘없이 달아났도다

7 예루살렘이 환난과 유리하는 고통을 당하는 날에 옛날의 모든 즐거움을 기억하였음이여 그의 백성이 대적의 손에 넘어졌으나 그를 돕는 자가 없었고 대적들은 그의 멸망을 비웃는도다

8 예루살렘이 크게 범죄함으로 조소거리가 되었으니 전에 그에게 영광을 돌리던 모든 사람이 그의 벗었음을 보고 업신여김이여 그는 탄식하며 물러가는도다

9 그의 더러운 것이 그의 옷깃에 묻어 있으나 그의 나중을 생각하지 아니함이여 그러므로 놀랍도록 낮아져도 그를 위로할 자가 없도다 여호와여 원수가 스스로 큰 체하오니 나의 환난을 감찰하소서

10 대적이 손을 펴서 그의 모든 보물들을 빼앗았나이다 주께서 이미 이방인들을 막아 주의 성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명령하신 그 성소에 그들이 들어간 것을 예루살렘이 보았나이다

11 그 모든 백성이 생명을 이으려고 보물로 먹을 것들을 바꾸었더니 지금도 탄식하며 양식을 구하나이다 나는 비천하오니 여호와여 나를 돌보시옵소서


오늘부터 예레미야 애가 묵상을 함께 합니다. 예레미야 애가는 다섯 장으로 이루어진 답관체 (아크로스틱) 시입니다. 아크로스틱이란 각 절 앞에 22개의 히브리어 알파벳을 순서대로 배열된 시편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애가는 책의 첫 글자를 제목으로 삼았던 유대인들의 습관을 따라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아!’라는 감탄의 의미를 갖는 ‘에카'로 불렀습니다. 그러나 후기 랍비들은 본서를 애가란 뜻의 ‘키노트'라고 불렀고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에서는 ‘슬픈 노래'란 뜻의 ‘드레노이'로 불리다가 라틴어 성경에서는 ‘예레미야애가'란 제목이 사용되었습니다. 영어와 한글 성경은 이 제목을 따르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예레미야애가 1장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폐허가 된 예루살렘의 참담한 실상과 죄인의 뒤늦은 후회 와 탄식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주전 586년 바벨론의 손에 의해 멸망해 버린 예루살렘을 끌어안고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을 아파하는 것입니다.1절에서 슬프다, 2절에서 밤에는 슬피 울고, 4절에서는 시온의 도로들이 슬퍼한다고 합니다. 열방의 으뜸이었고, 나라들 중에 여왕이었던 예루살렘이 종의 신분으로 몰락해 버린 것입니다(1절). 한때 이스라엘은 가나안 지역의 군주로서 주변국들로부터 조공을 받던 국가였으며, 이집트도 이스라엘을 무시하지 못하고 공주를 보내 솔로몬의 아내로 삼게 했을 정도였습니다(왕상3:1). 예루살렘의 부요함 역시 대단했습니다. “왕이 예루살렘에서 은을 돌 같이 흔하게 하고 백향목을 평지의 뽕나무 같이 많게 하였더라”(왕상 10:27절)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지금 그들의 현실은 열방 중에 여왕이던 여인은 모든 화려함과 빼어난 자태를 잃고 처량한 과부가 되었고(1절) 전 재산을 잃은 것도 부족해 아예 노예로 팔려버렸던 것입니다. 한때 여인의 처소는 거느리던 식솔들과 많은 방문객들로 인해 항상 붐볐지만 이제 그 발걸음이 끊긴 상태입니다. 앞으로의 상황도 좋지 않습니다. 그녀의 처소를 찾아오던 순례자들로 인해 붐비던 길들도 인적마저 끊겼습니다(4절). 순례자가 없으니 그들을 대신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던 제사장들도 할 일이 없어졌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마저 위협받고 있는 것입니다. 남자들은 전쟁에서 희생되고 살아남은 자들은 뭇 나라로 끌려 갔으니6절), 결혼을 앞둔 처녀들도 괴롭기만 합니다. 총체적으로 매우 어두운 미래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사랑하던 사람들마저 그녀를 버렸다는 점입니다(2절). 부귀와 영화를 누리던 때에 그리 많던 친구들과 연인들이 모두 어디로 갔는지 위로해 줄 사람하나 찾기도 힘들다는 것입니다. 위로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친구들도 다 배반한 것입니다. 

저자는 이같은 처참한 상황이 왜 일어났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8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예루살렘이 크게 범죄함으로 조소 거리가 되었으니…” 그들의 폐망은 그들이 죄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11절에 다시 하나님께 매달릴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비천하오니 여호와여 나를 돌보시옵소서..”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심판의 원인을 제대로 알아야 하나님께 제대로된 간구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했다면 그들은 한탄만 할 뿐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를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죠. 우리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면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내가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착각 속에서 계속 죄를 범하게 될 뿐, 그 근본 원인을 치유하지 못한 채 살아갈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제대로 알고 있습니까?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께 구원의 손길을 기대하며 간구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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