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1장 1-10절
1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2 그의 시종들이 왕께 아뢰되 우리 주 왕을 위하여 젊은 처녀 하나를 구하여 그로 왕을 받들어 모시게 하고 왕의 품에 누워 우리 주 왕으로 따뜻하시게 하리이다 하고
3 이스라엘 사방 영토 내에 아리따운 처녀를 구하던 중 수넴 여자 아비삭을 얻어 왕께 데려왔으니
4 이 처녀는 심히 아름다워 그가 왕을 받들어 시중들었으나 왕이 잠자리는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5 그 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호위병 오십 명을 준비하니
6 그는 압살롬 다음에 태어난 자요 용모가 심히 준수한 자라 그의 아버지가 네가 어찌하여 그리 하였느냐고 하는 말로 한 번도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
7 아도니야가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니 그들이 따르고 도우나
8 제사장 사독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선지자 나단과 시므이와 레이와 다윗의 용사들은 아도니야와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9 아도니야가 에느로겔 근방 소헬렛 바위 곁에서 양과 소와 살찐 송아지를 잡고 왕자 곧 자기의 모든 동생과 왕의 신하 된 유다 모든 사람을 다 청하였으나
10 선지자 나단과 브나야와 용사들과 자기 동생 솔로몬은 청하지 아니하였더라
구약 성경을 읽다보면 왜 이런 이야기가 성경에 나오는지 성경을 읽다가 시험에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다윗을 통해서 은혜로운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다윗이 저지를 죄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렇지? 라는 의문을 갖게 하면서 하나님의 전능성에 대해서 의심하게 됩니다. 성경은 거룩한 책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룩한 이야기만 성경에 나오기를 원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 자연적으로 마음이 정화되고, 자연적으로 경건해 지는 말씀을 원합니다. 그런데 열왕기상을 읽으시면서 그러한 바람은 접는 것이 좋습니다. 성경은 역사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환상적인 인간 완벽한 인간의 모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 속에서 내 자신을 발견하고 내 자신을 인정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읽는 자로 하여금 하나님께 나아오도록 인도하는 말씀입니다. 그 자체가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래서 묵상이 필요하고, 그래서 연구가 필요하고, 적용이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은 이제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시점이고 솔로몬은 아직 역사의 중심에 서 있지 못한 상황입니다. 이때 한 사람이 주목됩니다. 아도니야입니다. 오늘은 아도니야라는 인물에 집중하면서 묵상하기를 원합니다.
아도이야는 어떤 사람입니까?
성경에 나오는 아도니야에 대한 설명을 종합해 보겠습니다.
첫째는 용모가 심히 준수한 자라 합니다. 성경에 외모가 준수하다는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사울도 준수했고, 다윗도 준수했습니다. 그런데 아도니야는 그냥 준수한 것이 아니라 심히 준수했다고 합니다. 용모가 사람의 됨됨이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지만 성경에는 용모가 준수한 사람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모였고, 인기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는 성품도 좋았습니다. 본문을 보면 아버지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고 합니다. 아버지는 기본적으로 아들들에 상상한 기대치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입장에서 아도니야를 봤을 때 섭섭한 적이 없었다는 것은 모든 면에서 뛰어난 아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셋째 당시 최고의 장군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이 함께 했습니다. 요압장군은 다윗의 조카였고 다윗 옆에서 수많은 일들을 해 왔던 사람입니다. 아비아달은 사울이 아히멜렉제사장과 그 가족, 다른 제사장 85명을 죽인일이 있습니다. 그때 유일하게 살아남은 제사장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 대 제사장이 됩니다. 다윗의 총애를 받고 있던 자로 이스라엘의 영성을 책임지고 있었던 자입니다.
아도니야는 객관적으로 왕이 될 조건을 갖추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왕이 될 수 없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이미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시기로 작정하셨고 준비하셨기 때문이라고 그냥 그렇게 생각하면 되겠지만 저는 아도니야가 사람들 보기에는 완벽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왕이 될 수 없는 사람이었는데, 그 이유가 5절에 나옵니다. 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 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호위병 오십 명을 준비하니
여러분 아도니야의 약점을 볼 수 있습니까? 아도니야는 스스로 자기 자신을 높였습니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높여 왕이 되려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스스로 높아지는 자들을 성경에서는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스스로 높아지는 것을 교만이라고 합니다. 교만은 가온이라는 히브리어를 사용하는데 가온이라는 단어의 뜻이 영어로 보면 exaltation, excellence, 즉 높이다라는 단어와 함께 Pride 스스로 자부심을 갖는 이라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스스로 높아지려는 아도니야는 교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스스로 높아지고 싶습니다. 세상은 스스로 높아지고 잘난척 하는 사람을 인정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등등.. 교만은 우리가 제일 먼저 버려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전능하신 하나님 이외에는 높임을 받을 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높아지려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더 이상 의지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留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