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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23일



2023년 8월 23일


[렘24:1-10, 새번역]

1 주님께서 나에게 이런 것을 보여 주셨다. 내가 보니, 주님의 성전 앞에 무화과 광주리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이것은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이 여호야김의 아들 유다 왕 여고냐와 유다의 고관들을 비롯하여 기술자들과 대장장이들을 함께 예루살렘에서 포로로 사로잡아 바빌로니아로 데려간 뒤에 있었던 일이다.

2 그런데 한 광주리에는 맏물 무화과처럼 아주 좋은 무화과가 담겨 있었고, 다른 한 광주리에는 너무 나빠서 먹을 수도 없는 아주 나쁜 무화과가 담겨 있었다.

3 그 때에 주님께서 나에게 물으셨다.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였다. "무화과입니다. 좋은 무화과는 아주 좋고, 나쁜 무화과는 아주 나빠서, 먹을 수가 없습니다."

4 그러자 주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일러주셨다.

5 "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이 곳에서 바빌로니아 사람의 땅으로 내쫓은 유다의 포로들을 이 좋은 무화과처럼 잘 돌보아 주겠다.

6 내가 그들을 지켜 보면서 잘 되게 하고, 다시 이 땅으로 데려오겠다. 내가 그들을 세우고 헐지 않겠으며, 내가 그들을 심고 뽑지 않겠다.

7 이제는 내가 그들에게 나를 그들의 주로 알아볼 수 있는 마음을 주겠다. 그러면 그들이 온전한 마음으로 나에게 돌아와서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8 그러나, 유다 왕 시드기야와 그의 대신들을 비롯하여, 예루살렘에 남은 사람들과 이 땅에 남은 사람들과 이집트 땅으로 간 사람들은, 아주 나빠서 먹을 수가 없는, 나쁜 무화과처럼 만들어 버리겠다. 나 주가 분명히 말한다.

9 내가 그들을 세계 만국으로 흩어 놓아, 혐오의 대상이 되게 하겠다. 그러면 내가 쫓아 보낸 그 모든 곳에서, 그들이 수치와 조롱을 당하고, 비웃음과 저주를 받게 될 것이다.

10 그리고 내가 그들과 그들의 조상에게 준 땅에서 그들이 멸절될 때까지, 나는 계속 그들에게 전쟁과 기근과 염병을 보내겠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한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성전 앞에 두 광주리가 있는데, 한 광주리에는 아주 좋은 무화과가 있었고, 또 다른 한 광주리에는 먹을 수 없는 아주 나쁜 무화과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환상을 보여 주시며 좋은 무화과에 대한 의미를 이렇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본문 5절부터 7절입니다. 새번역성경으로 읽겠습니다.

"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이 곳에서 바빌로니아 사람의 땅으로 내쫓은 유다의 포로들을 이 좋은 무화과처럼 잘 돌보아 주겠다. 내가 그들을 지켜보면서 잘 되게 하고, 다시 이 땅으로 데려오겠다. 내가 그들을 세우고 헐지 않겠으며, 내가 그들을 심고 뽑지 않겠다. 이제는 내가 그들에게 나를 그들의 주로 알아볼 수 있는 마음을 주겠다. 그러면 그들이 온전한 마음으로 나에게 돌아와서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나쁜 무화과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본문 8절부터 10절입니다. 새 번역성경으로 읽겠습니다. "그러나, 유다 왕 시드기야와 그의 대신들을 비롯하여, 예루살렘에 남은 사람들과 이 땅에 남은 사람들과 이집트 땅으로 간 사람들은, 아주 나빠서 먹을 수가 없는, 나쁜 무화과처럼 만들어 버리겠다. 나 주가 분명히 말한다. 내가 그들을 세계 만국으로 흩어 놓아, 혐오의 대상이 되게 하겠다. 그러면 내가 쫓아 보낸 그 모든 곳에서, 그들이 수치와 조롱을 당하고, 비웃음과 저주를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들과 그들의 조상에게 준 땅에서 그들이 멸절될 때까지, 나는 계속 그들에게 전쟁과 기근과 염병을 보내겠다."


먼저 좋은 무화과와 나쁜 무화과로 지칭된 사람들을 보면, 좋은 무화과로 지칭된 사람들은 당시 바벨론에 붙잡혀간 유다의 포로들이었고, 나쁜 무화과로 지칭된 사람들은 유다 왕 시드기야와 그 고관들 그리고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자들과 애굽 땅에 거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포로로 끌려간 자들을 좋은 무화과라고 해서 그들이 원래 좋은 무화과였다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 5절 하반절에 보면 '좋은 무화과 같이 잘 돌볼 것이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때 '돌보다'라는 말은 히브리어 '나카르'입니다. 이 말은 '~로 여기다, 인정하다'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그들을 좋은 무화과로 인정해 주셨다는 말입니다.


사실 포로로 끌려간 자들이나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이나 예레미야가 전한 멸망에 관한 예언들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에 의해 포로로 끌려간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리고 순종하지 못한 결과로 받는 심판이라 여겼습니다. 이전에 그들은 교만하고 나태했지만, 포로로 끌려가자 그들안에 있던 교만과 나태함은 서서히 힘을 잃기 시작했고, 그들 마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준비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반면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자들의 마음은 그와 반대였습니다. 오늘 본문과 동일한 심판이 묘사된 예레미야 29장과 에스겔 11장을 보면 예루살렘에 남아있던 자들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먼저 예레미야 29:19절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들이 내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들에게 꾸준히 보냈으나 너희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자들은 자신들이 포로로 끌려가지 않은 것을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들은 포로로 끌려간 자들보다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우월하다는 교만에 계속 빠져 있었고, 계속해서 보내어진 선지자들의 말을 무시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자들이었고, 자신의 공로로 하나님의 은혜를 가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에스겔 11:3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말이 집 건축할 때가 가깝지 아니한즉 이 성읍은 가마가 되고 우리는 고기가 된다 하나니"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은 가마솥이 고기를 보호하고 감싸는 것처럼, 가마솥인 예루살렘성읍이 고기인 자신들을 천년만년 지켜줄 것처럼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 성읍을 절대적으로 의지했고, 그로 인해 안일했습니다. 자신들은 당연히 보호를 받아야 하는 자인 것 처럼 스스로를 소중히 여겼고, 마치 자신을 지켜주는 것이 하나님이 아닌 세상의 힘인 양 세상의 힘을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이 본 것은 그들을 안전하게 지켜 줄 것이라 믿었던 예루살렘성이 멸망당하여 무너지는 것이었고, 쫓겨남과 수치, 조롱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는 어떤 무화가 열매인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힘든 삶을 산다고 해서 나쁜 열매가 아닙니다. 예루살렘에 남았다고 해서 좋은 열매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겉 모습이 우리의 정체성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어느 곳에 있든 하나님의 뜻을 겸손히 묵상하며 그 뜻을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삶이 우리의 정체성을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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