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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7일




예레미야 1장 11-19절


1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시매 내가 대답하되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12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라 하시니라

13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 그 윗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다 하니

14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주민들에게 부어지리라

15 내가 북방 왕국들의 모든 족속들을 부를 것인즉 그들이 와서 예루살렘 성문 어귀에 각기 자리를 정하고 그 사방 모든 성벽과 유다 모든 성읍들을 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6 무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들에 절하였은즉 내가 나의 심판을 그들에게 선고하여 그들의 모든 죄악을 징계하리라

17 그러므로 너는 네 허리를 동이고 일어나 내가 네게 명령한 바를 다 그들에게 말하라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그들 앞에서 두려움을 당하지 않게 하리라

18 보라 내가 오늘 너를 그 온 땅과 유다 왕들과 그 지도자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땅 백성 앞에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였은즉

19 그들이 너를 치나 너를 이기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오늘 본문을 읽으면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부르신 이유가 나옵니다. 9-10절을 새번역 성경으로 읽겠습니다.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맡긴다. 똑똑히 보아라. 오늘 내가 뭇 민족과 나라들 위에 너를 세우고, 네가 그것들을 뽑으며 허물며, 멸망시키며 파괴하며, 세우며 심게 하였다." 여기에 나오는 세 쌍의 동사들(뽑다/허물다, 멸망시키다/파괴하다, 세우다/심다)은 모두 단순하게 말로만 하는 동사들이 아니라 그 안에 깊이 개입하는 행위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뽑고 허물기 위해서는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멸망시키고 파괴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저항도 경험해야 합니다. 세우고 심기 위해서는 물도 줘야 하고 격려도 해야 합니다. 이 일들을 예레미야는 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하나님이 단호하게 선택하신것입니다. 하지만 어제 묵상한 본문에서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하며 자신 없는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그가 변화될 모습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18-19절입니다. “보라 내가 오늘 너를 그 온 땅과 유다 왕들과 그 지도자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땅 백성 앞에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였은즉 그들이 너를 치나 너를 이기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예레미야의 삶에서 이러한 일들은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 전 역사상 가장 어지러운 시절에 사역을 했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과 맞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무자비하게 조롱 당하고 가혹하게 박해도 받았습니다. 그는 변질과 타협을 요구하는 수 많은 압력이 있었지만 그는 결코 굴하지 않는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 성벽'으로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예레미야가 어떻게 어리다고 변명하는 사람에서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놋 성벽'으로 60년간 사역할 수 있었을까요?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세우기 위해서 사용하신 독특한 교육 방식이 있습니다. 시청각 교육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겸비케 하기 위해서 두가지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첫째 환상은 살구나무 환상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야, 너는 무엇을 보고 있느냐?" 예레미야가 대답합니다. "저는 살구나무 가지를 보고 있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바로 보았다. 내가 한 말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내가 지켜보고 있다." (렘 1:11-12). 전에도 말씀 드렸듯이 본문에서 번역된 살구나무는 원래 “아몬드 나무”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우리가 이 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약시대에 살구나무가 특별한 용법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첫째는 살구나무는 시각적인 강조가 필요할 때 사용되는 나무입니다. 살구나무는 팔레스틴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는 나무 중 하나입니다. 살구나무는 잎이 나기 전에 꽃 봉오리가 눈과 같이 하얗게 피어납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개나리와 같습니다. 겨울이 가고 따뜻한 봄이 온다고 표현할 때 개나리를 사용하는 것 처럼 팔레스타인 땅에 아직도 겨울의 찬기가 남아 있는데도 살구나무는 그 땅에 봄이 온다는 약속을 보여주는 꽃입니다. 또한 살구나무는 청각적인 강조의 용법이 있습니다. 살구나무라는 단어와 지켜보다라는 단어는 거의 동일한 음을 갖습니다. "예레미야야, 너는 무엇을 보고 있느냐?" 저는 '샤퀘드'를 보고 있습니다. "그래 네가 바로 보았다. 나도 내 말이 이뤄지는 것을 쇼퀘드'하고 있기 때문이다.” 살구나무를 보여주신 것은 시각적인 교육과 청각적인 교육의 방법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남은 생애 내내 봄마다 살구꽃, 곧 '샤퀘드'가 시야에 들어면 '쇼퀘드'라는 소리가 기억나도록 기억 장치를 건드릴 것이고, 남은 생애 내내 일상의 단어인 '쇼퀘드'라는 말을 들을 때 마다.. '샤퀘드'가 시각적 영상으로 떠 올라 봄이 연상시키는 생명력의 약동과 원기 왕성한 분위기를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훈련 방법입니다. 말씀이 삶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입니다.


둘째 환상은 끓는 솥 환상입니다. 하나님이 다시 물으십니다. "너는 무엇을 보고 있느냐" 예레미야가 대답합니다. '물이 끓는 솥이 있습니다. 그 솥의 물이 북쪽에서부터 넘쳐 흐르고 있습니다." (렘 1:13). 예레미야가 바라본 환상에는 솥이 기울어져서 끓는 물이 남쪽으로 흘러 넘치고 있었습니다. 그 솥은 이스라엘을 향해 쏟아져 내리는 적군이었습니다. 북쪽에 자리잡고 있던 나라들은 전쟁의 솥을 끓이고 있었고, 곧 그 땅을 악의 홍수로 뒤덮게 될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펄펄 끓는 심판이 도래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저버리고 그 자리를 하찮은 종교 의식과 무가치한 우상 숭배로 대치했기 때문입니다(1:16). 두번째 환상은 첫번째 환상과 대조적으로 부정적입니다. 무섭습니다. 피하고 싶은 미래입니다. 그러나 솥의 환상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긍정적입니다. 왜냐하면 이 메시지가 보여주는 궁극적인 외침은 악은 하나님의 컨트롤 안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이 두가지 환상을 통해서 두가지 중요한 주제에 대해서 배웁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에 대해서, 하나님은 말씀을 이루시는 분,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라는 것을 배웁니다. 그리고 악에 대해 배웁니다. 악은 세상에 만연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아프게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악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통제 밑에 있고 악이 하나님을 다스릴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준비된 하나님의 선지자가 되어갑니다. 어리다고 말하던 그가 이제 놋 성벽이 되어 이스라엘의 믿음을 지켜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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