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도서 3장 8-15절
8 이 말이 미쁘도다 원하건대 너는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
9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은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
10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11 이러한 사람은 네가 아는 바와 같이 부패하여 스스로 정죄한 자로서 죄를 짓느니라
12 내가 아데마나 두기고를 네게 보내리니 그 때에 네가 급히 니고볼리로 내게 오라 내가 거기서 겨울을 지내기로 작정하였노라
13 율법교사 세나와 및 아볼로를 급히 먼저 보내어 그들로 부족함이 없게 하고
14 또 우리 사람들도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준비하는 좋은 일에 힘 쓰기를 배우게 하라
15 나와 함께 있는 자가 다 네게 문안하니 믿음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너도 문안하라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지어다
목회할 때 성도님의 잘못을 직접적으로 지적하고 훈계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방어적이기 때문에 목회자의 지적을 인정하고 자신의 잘못을 고치려 하기 보다는 여러가지 핑계를 말할 뿐 아니라 목회자의 인성에 문제 있다고 공격적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디도에게 “너는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고 권면합니다. 굳세게 말한다는 것은 strongly maintain, confidently assert, 즉 강하게 말하고, 확신을 가지고 주장하라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사도 바울이 요구하는 ‘이 여러 것’이란 4절에서 7절까지 언급한 내용입니다. 4절에서는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말하고 있으며 5절에서는 구원의 은혜성과 중생과 성령의 새롭게 함을 말하고 있으며 6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받음을 말하고 있으며 7절에서는 칭의와 양자됨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구원의 핵심 내용입니다. 사도 바울이 목회자 디도에게 강력하게 요구하는 것은 목회에서 선포할 가장 중요한 내용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죄인 된 인간을 구원하셨는지를 굳세게 말하라,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중요하기에 사도 바울은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다’고 말하였습니다. 목회자가 이 복음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강하게 선포할 때 구원받은 자들인 교인들이 자신의 행실을 조심하게 되어 선한 일에 힘쓰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행실이 바르지 못하면 무엇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세상으로부터 비난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비난받게 되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선한 행실을 위하여 힘쓰고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당신은 교회 다니는 사람이죠’라는 말을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반면에 바울은 한두번 훈계 한 후 멀리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합니다. 이단에 속한 사람들을 대할 때 입니다. 여러분, 바울이 왜 멀리 하라고 권면했을까요? 이단에 속한 사람들을 포기하라는 것일까요? 이단에 속한 사람들은 사단에 사로 잡힌 사람들이기 때문에 인간적인 노력으로 그들을 돌이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고 이단에 속한 사람과 영적인 싸움을 할 때 다른 성도들에게 미칠 악 영향을 고려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목회할 때 이단에 빠진 성도가 있었습니다. 수년 동안 이단에 속한 것을 속이고 교회 출석하며 다른 성도들을 포섭 하려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와 상담할 때 제가 느낀 것은 이사람과 교리적인 논쟁을 하다가 저도 지치고 다른 성도들도 시험에 들겠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이 때 이 본문의 말씀을 붙들고 그사람과 논쟁을 그치고 멀리했습니다. 저는 교회와 다른 성도들을 보호해야 하는 입장으로 그분을 대하기 시작했고 결국 그 분은 교회를 떠났습니다. 한편으로는 끝까지 붙들고 돌이키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공동체를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바울의 멀리하라는 권면이 옳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제 바울은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말합니다. 12절에 보면 바울은 디도에게 아데마나 두기고 중 한 명이 도착하면 급히 니고볼리에 있는 자신에게 오라고 말합니다. 왜 바울이 아데마나 두기고를 디도에게 보냈을까요? 디도가 그레데 교회를 비울 때 둘 중에 한 명이 대신 교회를 돌보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디도가 그냥 그레데 교회를 비우면 그 사이에 거짓 교사가 교인을 미혹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왜 대체 목회자까지 보내면서 디도를 니고볼리로 오게 했을까요? 학자들은 마게도냐 서북쪽의 달마디아 선교를 위해 함께 기도하며 선교 전략을 짜기 위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바울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디도서를 묵상하며서 다시 한번 복음에 대한 바울의 열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에 열정적입니까? 썩어 없어질 것에 열정을 쓰겠습니까? 영원한 것을 위해 썩어 없어질 것을 포기할 수 있는 열정을 보이겠습니까? 나의 열정은 어디에 있는지 스스로 돌아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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