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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4일





디도서 3장 1-7절


1 너는 그들로 하여금 통치자들과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준비하게 하며

2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3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으나

4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6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7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성도들이 마땅히 행해야 할 선한 일에 대해 말한 다음, 선한 일을 행해야만 하는 이유가 구원 받은 자라는 사실에 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즉 구원 받은 성도는 선한 행위가 있어야 합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남을 비난치 않고 다투지 않고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자비와 사랑으로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은 자가 되었기에 이제는 그 긍휼을 내 삶으로 실천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3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으나” 여기서 ‘우리’는 디도서를 기록하고 있는 사도 바울을 비롯한 믿음의 사람들을 일컫는 말씀입니다. 그 믿음의 사람도 주님을 믿기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사단에게 속았었고,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 했으며,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가증스러운 자였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전에는..’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이처럼 사단에게 속고, 정욕에 종노릇 했고,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가증스러운 자였으나, 그 후로는 예수를 믿은 이후로는 이런 사람이 아니라 변화된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사단에게 속아서 죄의 노예가 되어 사단에게 종노릇 하는 불쌍한 인생을 살다가 이제 사단의 종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그에 걸맞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에 걸맞은 삶은 어떤 삶인가요? 1~2절입니다.

“너는 그들로 하여금 통치자들과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준비하게 하며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제일 먼저 언급된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걸맞은 삶은 통치자들과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는 것이라 말씀합니다. 디도서가 기록된 시기는 보통 AD65년 경으로 학자들은 추정합니다. 그러니까 AD63년 경에 기록된 디모데전서와 AD67년 경에 기록된 디모데후서 사이에 기록된 서신이라는 말씀입니다.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순교를 앞두고 제일 마지막에 기록된 서신서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디도서를 기록하고 있는 바울의 상황은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당시 로마 황제인 네로에게 핍박받고 있는 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통치자들과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이 세상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이 땅의 통치자들과 권세 잡은 자들에게 다스림의 권위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도 바울은 당시 이 땅의 통치자인 로마 네로황제에 의해 참수형을 당해 순교했습니다. 주를 위해 의로운 일을 하는 사도 바울을 죽인 자들에게 복종하고 순종하라고 그것이 선한 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정말 실천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원수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원수는커녕 내 부모형제를 사랑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을 하라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실리는 없습니다. 할 수 있기에 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런 삶이 가능하겠습니까? 4~5절입니다.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셨는지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근거는 우리의 의로운 행위가 아니라 그 분의 긍휼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3:20절에서,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함을 받을 육체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인본주의는 인간 스스로 구원을 이룰 수 있을 뿐만아니라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반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타락한 존재이며 절대로 인간 스스로 구원의 자리로 나아갈 수 없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8:13절에서, 자기 의를 자랑하는 바리새인이 아니라 가슴을 치면서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애통해 했던 세리가 더 의로운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긍휼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행위로 인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었습니다. 사단의 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 신분이 바뀐 이유가 내 행위로 인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 때문이었습니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나로부터 시작되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면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오늘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서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가 실천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동력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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