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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26일





예레미야 9장 17-26절


17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잘 생각해 보고 곡하는 부녀를 불러오며 또 사람을 보내 지혜로운 부녀를 불러오되

18 그들로 빨리 와서 우리를 위하여 애곡하여 우리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게 하며 우리 눈꺼풀에서 물이 쏟아지게 하라

19 이는 시온에서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기를 우리가 아주 망하였구나 우리가 크게 부끄러움을 당하였구나 우리가 그 땅을 떠난 것은 그들이 우리 거처를 헐었음이로다 함이로다

20 부녀들이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너희 귀에 그 입의 말씀을 받으라 너희 딸들에게 애곡하게 하고 각기 이웃에게 슬픈 노래를 가르치라

21 무릇 사망이 우리 창문을 통하여 넘어 들어오며 우리 궁실에 들어오며 밖에서는 자녀들을 거리에서는 청년들을 멸절하려 하느니라

22 너는 이같이 말하라 여호와의 말씀에 사람의 시체가 분토 같이 들에 떨어질 것이며 추수하는 자의 뒤에 버려져 거두지 못한 곡식단 같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2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24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5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면 할례 받은 자와 할례 받지 못한 자를 내가 다 벌하리니

26 곧 애굽과 유다와 에돔과 암몬 자손과 모압과 및 광야에 살면서 살쩍을 깎은 자들에게라 무릇 모든 민족은 할례를 받지 못하였고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느니라 하셨느니라


오늘 본문 23-24절은 많은 분들이 암송하는 말씀중의 하나입니다.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은 자랑하지 말 것과 자랑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랑하지 말 것은 자신의 지혜와 용맹과 부함입니다. 자랑하지 말아야 할 것은 지혜, 힘, 돈입니다. 이런게 있는 데 자랑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똑똑해서 좋은 대학 나오고, 남들이 선망하는 전문직이나 대기업에 취직하면 얼마나 자랑스럽습니까? 그런 문제는 사람은 자기 한사람 자랑으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내 자식이 그렇다는 것, 심지어 나 그런 사람 안다는 것 가지고도 여러 사람이 자랑합니다. 부자라면 그 재물이 얼마나 자랑스럽습니까? 어떻게 보면, 이렇게 자랑은 당연한 본성인데 하나님은 왜 지혜와 힘과 돈을 자랑하지 말라고 하실까요? 먼저는 일반적으로 잠언 27장1절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사람들이 자랑하는 것들이 내일 하루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사람의 지혜의 허무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윗의 일생 중에 큰아들 압살롬이 아버지를 반역했을 때입니다. 압살롬의 참모 중에 아히도벨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지혜가 얼마나 뛰어났는지 그의 입으로 지략을 내면 사람들이 그걸 하나님께 받은 말씀과 같이 여겼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윗을 완벽히 제거할 작전회의에서 이 아히도벨의 작전이 채택이 되지 않고 후새의 작전이 채택이 됩니다. 사람들이 다 후새의 작전이 더 낫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그러자 아히도벨이 고향으로 돌아가 집을 정리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죽습니다. 얼마나 황당한 이야기입니까? 자기보다 더 지혜롭다고 인정받는 사람이 나오자 자존심이 무너지고 지독한 수치심이 몰려왔던 것이죠. 인간이 자랑하는 지혜가 이렇게 허무합니다.

고린도전서 4장 7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뇨”

하나님은 우리에게 알맞은 지혜와 재능을 주시고 어떻게 세상에서 쓸모 있게 사용할지도 청사진을 갖고 계십니다. 내가 앞 일을 결정한 대로 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최선의 노력과 준비를 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남과 비교하여 자랑한다면 반드시 남과 비교하여 열등감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자랑하지 말아야 할까요? 아닙니다. 우리가 자랑하며 살 것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나를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비교할 때 두드러진 특징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여기서 아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을 지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친밀하게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친밀하게 아는 것에 대해서는 마음 놓고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세 가지를 짧게 생각해 보겠습니다. 먼저는 사랑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랑이란 히브리어로 “헤세드”입니다. 이 말을 개역성경에서는 “인애”라고 번역했습니다. 헤세드란? 히브리어로 ‘은혜, 긍휼, 인애, 자비, 신실한 사랑’ 등을 뜻합니다. 즉 이 '헤세드'는 하나님 사랑의 넓이와 깊이와 높이가 한량없음을 뜻하는 함축적인 단어인 것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시선이 정죄와 판단이 아닌 헤세드의 사랑임을 의미합니다. 이 헤세드를 오해할까싶어서 그런지 다음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속성으로 “정의”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종종 방종과 바꾸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우리의 속성을 제어해 주는 하나님의 속성은 정의를 행하시는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사랑과 동시에 정의를 행하시는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공의를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여기서 공의란 히브리어로 “체다카”라는 말인데 이는 “의로움, 공의, 의로운 행위”라는 뜻입니다. 개역성경은 이 단어를 “정직”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 중에, 그리고 전 세계 사람들 중에 편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모스는 아모스서 5장 24절에서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사랑과 정의와 공의”, 이는 하나님의 속성을 가리키는 말씀인데 그러므로 우리를 구원하심도 “사랑과 정의”로 행하신 “공의로운” 행사였음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는 자기 아들을 화목제물로 내어주신 십자가 사건에 동시에 나타난 것입니다. 이를 알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길만이 신구약을 막론하고 유일한 구원의 방도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를 알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를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자랑하라고 하신 말씀은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서 열어놓으신 그리스도께 나오며 나아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하나님을 알고 “사랑과 정의와 공의”의 삶을 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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