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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8일




로마서 7장 1-13절


1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그 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2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3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녀라 그러나 만일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롭게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4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8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9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10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11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12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13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


재정된 법이 없었다고 가정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싸움을 잘 하는 한 사람이 누군가의 물건을 갖고 싶어 강탈했는데, 법이 없다면 그 사람은 내가 원하는 거 내 맘대로 하는데 뭐가 잘못이야? 라고 주변 사람들을 윽박 지르며 정당한 행위였다고 우길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이 법 없이 그냥 용인되는 사회는 힘이 지배하는 무법천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 나라가 아니라고 말씀하시며 그런 행동은 “죄” 라고 규정하신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죄를 알게 하였고,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살도록 인도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성경은 율법을 지키며 살아가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유대인들은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율법에 대해서 변질된 삶을 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어떻게 율법에 대해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던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의로운 자였다고 스스로 말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율법적인 기준과 판단으로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 인들은 죽여도 된다고 판단하고 정죄한 것입니다. 열심히 예수 믿는 자들을 잡으러 다녔고, 죽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진실을 알게 되니까 자신이 그동안 율법의 행위에 얽매인 삶을 살았던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6절 상반부에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바울은 율법으로부터 자유를 얻었다고 말합니다.

이 부분에서 헷갈립니다. 그래서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인가? 율법을 지키지 말라는 것인가? 율법은 필요없다는 것인가? 율법은 있어야 한다는 것인가?

여기서 우리는 구별 해야 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율법의 자유는 율법의 정신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율법의 형식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합니다. 율법의 정신인 정의, 긍휼, 믿음은 절대로 없어져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벗어났다는 것은 율법의 형식으로부터 자유로워 진 것입니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것은 구약의 제사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구약의 율법은 하나님께 나아갈 때 반드시 제사장을 통해야 했습니다. 죄 용서를 받기 위해서 제물을 잡아야했고, 흠없는 짐승의 피를 뿌려야 했습니다. 번제를 드리기 위해서는 제물을 다 태워야 했습니다. 이런 율법적인 형식으로부터 율법적인 행위로부터 자유함을 얻게 된 것입니다. 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4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는 율법의 형식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담력을 얻었습니다. 얽매고 있던 제사의 형식과 절차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율법으로부터 벗어났다는 것은 율법이 정한 행동 이상의 것을 할 수 있는 자유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613개의 조항을 만들어 율법을 지켰습니다. 이렇게 많은 율법을 지키는 일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킬 때 (어떤 마음이었겠습니까?) 의무적으로,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이러한 행동을 하면 의롭다고 여김을 받는 다는 생각으로 조항을 지키면, 그 조항들은 벌을 모면하기 위한 최소한의 행동 규칙이 될 뿐입니다. 율법의 조문을 지킬 때 누릴 수 있는 기쁨은 없고, 조문을 지키지 않았을 때 받아야 하는 처벌이 두렵기 때문에 이러한 조문들은 바울을 얽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자유함이 생겼습니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과거에는 벌을 받을 까봐 두려워 억지로 지켰던 율법이지만, 이제는 그 이상으로 율법이 말씀하는 정신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과거에는 율법에 얽매어 죽어가는 사람을 거들떠 보지 않았던 제사장과 레위인이 율법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으면, 긍휼한 마음으로 사람을 도와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행위로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율법에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은 자유가 있습니다 이 하나님이 주신 자유로,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하고, 하나님과 교제하고, 성도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백성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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