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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ncyeollin

2023년 6월 3일




로마서 4장 13-25절


13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14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

15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16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23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오늘 본문은 계속해서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 말씀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믿음은 무엇인가요? 스펄전 목사님은 진정한 믿음은 세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합니다. 첫째는 지식입니다.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지식이 기본적으로 필요한데, 우리는 알지도 못하는 것을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작은 경험이든지, 작은 지식이든지 여하튼 무언가 알아야 믿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10장 14절에 바울은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오” 라고 말하며 사람은 먼저 어떤 사실에 대해서 알아야 믿을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특별히 그리스도 예수, 하나님의 아들이신 구세주를 알아야 합니다. 그분은 인간으로서 우리와 연합하시고, 신으로서 하나님과 연합되신 분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가 되셔서 그 손으로 각각 하나님과 사람을 붙잡고 계십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왜 예수님이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셨는지를 알기 원하십니다. 이 사실을 알 때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 때 믿음이 시작됩니다.


둘째 요소는 동의 입니다. 아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지적 호기심만 만족하는 것입니다. 내가 아는 지식에 동의해야 합니다. 동의한다는 것은 진실로 예수님께서 우리 하나님이요, 구주요, 인류의 구속자요, 선지자요, 제사장이요, 왕이심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신학적으로 공부하면 이 교리를 누구나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동의한 사람은 자신의 죄를 위해 대속하신 예수님을 마음 가운데 구세주로 모십니다. 동의 한 사람은 더 이상 정죄함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구세주 되신 예수님의 말씀을 사모합니다.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살아갑니다. 예수님의 사역에 동의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셋째로, 신뢰입니다. 신뢰는 나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부모님에게 달려가 안깁니다. 안길 때 모습을 보면 완전히 자신을 부모님께 맡깁니다. 부모님에 대한 의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믿는 다는 것은 이렇게 의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의 미래에 대한 소망까지도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따라서 믿음이 있는 분들은 죽으시고 살아계시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기 때문에 천국에 대한 소망이 흔들리지 않고 하루 하루 살아갑니다. 그것이 바로 신뢰하는 삶입니다. 믿음은 단지 동의하는 수준을 넘어 나의 모든 것을 맡기는 신뢰의 단계까지 가는 것입니다. 청교도들은 믿음을 종종 '기대 누움'이라는 말로 설명했습니다. 믿음은 늘 그리스도께 기대서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온몸을 한껏 뻗쳐서 침대에 기대어 납 작 드러눕듯 그리스도께 완전히 자신을 던집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는 것이고, 이 같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한가지 있습니다. 예수님께 매달리는 것입니다.


스펄전 목사님 책에 이런 예화가 나옵니다. 바닷가에 가면 바위에 붙은 조개를 볼 수 있습니다. 바위 위를 살금살금 걸어가 막대기로 힘껏 내려칠 때 조개는 떨어집니다. 그런데 조개를 내려치는 소리를 옆의 조개가 들었다면 그 조개는 있는 힘을 다해 매달릴 것입니다. 그렇게 매달리는 조개는 아무리 막대기로 내려 쳐도 절대로 떼어낼 수 없다고 합니다. 해녀들은 한번 놓친 전복을 다시 잡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전복은 두번 다시 붙잡히지 않으려고 바위에 있는 힘을 다해 매달리기 때문에 절대로 떼어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조개나 전복은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매달립니다. 자기가 매달린 바위에 대해, 그 바위의 지질학적 성분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있는 힘을 다해 매달립니다. 그것이 조개가 아는 지식의 전부입니다. 이렇게 매달릴 때 조개는 생명을 유지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의롭다 칭함을 받은 사람도 엄청난 지식을 갖고 복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자신의 마음과 목숨에 대해 예수님께 매달리는 지식을 갖고 매달리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께 매달리지 않으면 죽는다, 그러나 예수님을 통해서 살 수 있다” 이 한가지만 알고 매달리면 됩니다. 매달리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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