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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28일



로마서 15장 22-33절


22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23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

24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사귐으로 얼마간 기쁨을 가진 후에 너희가 그리로 보내주기를 바람이라

25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26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음이라

27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28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그들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 들렀다가 서바나로 가리라

29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

3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31 나로 유대에서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로부터 건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하여 내가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을 만하게 하고

32 나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

33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오늘 본문에 보면 연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연보는 보통 헌금으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사용된 연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코이노니아"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코이노니아라는 단어는 "어떤 일을 함께 한다" 의미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5장 10절에 보면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때 동업자라는 단어가 코이노니아..로 쓰였습니다. 함께 일하는 것입니다. 또한 코이노니아는 자신의 물건을 함께 나누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이같은 의미를 가진 코이노니로 공동체가 보여야할 진정한 코이노니아는 어떤 것인지, 어떻게 연보해야 할 것인지 자신의 경험을 말하며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코이노니아는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바울이 원래 원했던 것은 스페인으로 가기 전에 로마에 들려 그들을 만나고 교제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루살렘의 상황이 너무 열악하기 때문에 예루살렘에 가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은 두 가지 급격한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하나는 기근에 의한 고통입니다. 또 하나는 스데반 집사의 순교 이후에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핍박으로 인한 경제적인 고통입니다. 특별히 예루살렘 교회는 자신의 재산을 팔아서 교회 공동체 안으로 들어왔는데, 이런 경우 장기적으로 보면 경제적인 생존 능력을 잃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예루살렘 교회가 많은 어려움을 직면했기 때문에 이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으로 로마로 가고 싶은 마음은 너무 크지만 그는 예루살렘으로 갈 수 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결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존 스토트 목사는 이런 결정을 하는 바울이 치뤄야 할 댓가를 계산했습니다. 바울이 바다로 여행한다고 가정할 경우 고린도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은 1300키로,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가는 것이 2400키로, 로마에서 스페인으로 가는 것은 1100키로 입니다. 이를 모두 합하며 4800키로 인데, 그러나 그가 원래 계획대로 고린도에서 스페인으로 직접 갈 경우 그 여행은 2400키로로 절반으로 줄어 들게 됩니다. 나이도 많고, 몸도 불편한 바울이 이러한 여행 경로를 선택한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루살렘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의 유익과 교회의 연합, 그리고 코이노니아를 위해서 자신의 여행 길이를 두배로 만드는 손해를 감수 한 것입니다.

둘째 코이노니아는 기쁨으로 하는 것입니다. 26절에 보면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음이라."고 합니다. 27절에 보면 다시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라고 하면서 기쁨이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코이노니아는 기쁨으로 하는 것입니다. 만일 기쁨으로 하는 것이 아니면 그것은 더이상 코이노니아가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이 코이노니아는 마땅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27절에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말을 합니다.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은 의무감에, 강압에 의해서 해야 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그런 의미에서 마땅히가 아니라 우리가 숨을 쉬듯이.. 우리가 밥을 먹듯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진 피터슨은 본문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이는 그들이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예루살렘 공동체로부터 흘러나오는 영적 선물을 풍성히 얻어 누려온 것을 생각할 때, 그들이 그 공동체의 가난을 덜어 주기 위해 힘을 다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이방 지역의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공급해 주는 영적인 선물을 받았습니다.선교사를 파송하고, 복음을 증거하고, 기도로 교회를 세워주는 모 교회의 역할을 예루살렘 교회에서 했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 사실을 제대로 깨닫고 있다고 한다면 예루살렘교회는 그들의 형제요, 가족이요, 영적인 어머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고 그렇다면 예루살렘 교회의 어려움에 대해서 그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땅히 그들에게 물질로 한 마음이 되어 코이노니아를 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코이노니아를 통해 세워지는 것이 믿음의 공동체 입니다. 예수님이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오셨고, 기쁨으로 순종하셨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는 우리는 코이노니아의 삶을 살고 있는지 돌아 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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