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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22일



로마서 12장 9-21절


9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14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15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16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17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이런 말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체포 당했을 경우 당신에게는 당신의 유죄를 입증할 충분한 증거가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우리는 죄 용서를 받고 구원 받았습니다. 그 은혜와 사랑을 조금이라도 경험하셨다면 그리스도 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이러한 박해와 핍박을 이기고 승리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핍박이 있다는 것은 내가 진리 가운데 서 있다는 것입니다. 핍박이 있다는 것은 신앙적으로 올바르게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의 반증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앙인이기 때문에 경험하는 핍박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진리를 가지고 세상 속에서 사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생길 수 밖에 없는 자연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바울은 14절부터 우리가 그러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몇 가지 (해야 만 하는) 행동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첫째, 아주 역설적이지만 축복하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 축복하는 것도 힘들어하는데, 하물며 나를 핍박하고 박해하는 자를 축복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없이는 도저히 실천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축복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언제 가능할까요? 내가 축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도 축복 받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지만 하나님의 사랑으로 축복을 받았다는 것을 인정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두번째 핍박 받을 때 해야 할 일은 혼자 있지 않는 것입니다. 바울은 우는 자들과 함께 울고, 웃는 자들과 함께 웃으라고 권면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어려워 합니다. 어떻게 울고, 어떻게 웃을 지.. 를 고민합니다. 울을 때 뭐라고 한 마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웃을 때 멋진 말로 격려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중요한 단어가 있습니다. “함께”라는 단어 입니다. 어떻게 웃고, 어떻게 우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상대 방이 울고 있을 때 위로의 말을 찾습니다.상대 방이 즐거워 할 때 뭐라고 한마디 해 줘야 할 것 같은 강박 관념에 사로 잡힙니다. 바울은 아주 간단히 말합니다. 함께 웃으라, 함께 울라… 바울은 이러한 확신을 가지고 로마서를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1장 12절에 보면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바울은 그 누구도 다른 이들보다 더 위대하거나 미약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서로 위로하고, 서로 격려할 때 그것으로 우리는 위로 받고 격려 받아 박해 조차도 극복 하는 공동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박해하는 자들을 대하며 박해를 극복할 수 있는 세 번째 행동은 겸손입니다. 16절 함께 읽습니다.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박해 받으며 살고 있는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어떻게 더 낮아 지라는 건지. 의아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겸손이 어떻게 박해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는지도 의문스럽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겸손함 없다고 한다면 우리는 절대로 세상 사람들의 박해를 이길 수 있는 무기가 없습니다. 겸손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최고의 무기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선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도모한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세상에 어떻게 움직일지 사전에 미리 예측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입니다. 즉 내가 경험한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것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보여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평화 입니다. 화목입니다. 싸우지 않는 것입니다. 이사야 11장 6절 그날에 대한 비전을 보여 주십니다. “늑대가 새끼 양과 어울리고 표범이 숫염소와 함께 뒹굴며 새끼 사자와 송아지가 함께 풀을 뜯으리니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에게 악한 행동을 한 사람들에게 원수를 갚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20절에 보면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고 권면합니다. 숯불을 그 머리에 쌓는 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어떻게 해석하면 우리가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하면 그들도 자신의 잘못을 깨달아 얼굴이 화끈 거릴 정도로 스스로 수치심을 경험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해석은 좀 보복의 냄새가 납니다. 하지만 이집트의 문헌에 보면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사람이 자발적으로 가지 머리에 숯불이 담긴 토기를 인 채 자신에게 해를 입은 사람을 찾아가는 모습이 나오는데 이는 용서를 베풀면 용서는 원수가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일 원수에게도 친절을 베풀고 용서를 하게 되면 그 친절과 용서는 원수를 원수로 놔두는 것이 아니라 원수가 회개하는 길로 인도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도모해야 하는 선한 일입니다.

몇가지를 말씀 드렸는데, 다 실천하시면 금상첨화입니다. 그러나 혹시 여러분이 잘 안되시는 것 하나만이라도 마음속에 담고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다른 것 없습니다. 예수님 십자가를 붙잡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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