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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21일





로마서 12장 1-8절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4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8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로마서 12장은 "그러므로"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시작합니다. 이 단어는 그전까지 바울이 했던 말들과 이제 할 말들 사이를 연결해 주는데, 보기에는 로마서 12장 1절과 11장 끝부분의 장엄한 송영 사이를 연결시키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계획에서 유대인의 위치에 대해서 세 장에 걸쳐 (9-11장) 씨름했고, 힘겨운 연구 끝에 마침내 두 손 들고 이렇게 외칩니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길은 내가 이해하기에는 너무도 높고 높습니다.” 이사야 40장 13절과 욥기 41장 11절을 인용함으로 11장을 마무리 했고, 이제 새로운 주제로 넘어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로마서를 전체적으로 볼 때 깨닫게 되는 것은 단순히 11장 끝부분을 연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 단어는 바울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는 1-11장 (공식적 교리를 다룬 장들)과 … 교회 공동체내에서 상호 사랑에 대해 말하는 12-16장 (윤리적 권고) 전체를 서로 연결시키는 경첩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1-11장과 12-16장을 연결하면서 가장 중요한 삶의 자세를 명령하는데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바울이 로마서에서 많이 강조하는 것 중의 하나가 믿음으로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직 하나님의 십자가 사랑 때문입니다.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고 선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가까워졌습니다. 전에는 하나님과 관계를 가질 수 없었지만, 이제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관계는 한번 맺었다고 돈독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러므로…라는 말로 시작하며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말하는데,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과 바울이 말하는 거룩한 산 제물로 몸을 드리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여러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린다…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먼저, 살아있는 제물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원래 제물은 살아있으면 안됩니다. 구약의 제사에서는 절대로 살아있는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았습니다. 왜요? 제물은 제사자의 죄를 대신 지고 죽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산 제물은 제단에서 내려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위로 올라가지도 않았겠죠. 그런데 바울은 왜 산 제물로 드려야 한다고 했을까요?

무엇보다, 예수님이 나 대신 죽었기 때문에 나는 살아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수동적이 아니라 능동적인 자세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죽은 제물은 자신의 뜻이 없습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반면 살아 있는 제물은 자기 스스로 나아가지 않으면 절대로 제물이 될 수 없습니다. 이삭은 이런 의미에서 능동적이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의 말에 아무 생각없이 죽은 제물처럼 누워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순종하며 누워 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내 의지로 해야 합니다. 팀 켈러 목사는 “제물은 원래 죽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산 제물’은 ‘살아있는 죽임’이 된다! 다시 말해 우리의 전부를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순종할 수 있도록 우리의 태도를 끊임없이 새롭게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죽은 제물은 단 한번의 제사로 끝납니다. 그러나 산 제물은 살아있는 동안 하나님께 끊임없이 내 자신을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원하시는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룩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영적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보통 영적이라는 것을 Spirit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영쩍~~으로 웅장한 느낌있는.. 예배가 예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헬라어로 Logicos라는 단어입니다. 로직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죠? 앞뒤가 맞는, 합당한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마땅히 드리는 예배는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살아있는 제물로 하나님께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살아있는 제물이 되시기 바랍니다. 내 생각, 감정, 재능, 시간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리고, 주님과 교제하고,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관계가 없으면, 구원의 기쁨을 잃어버립니다. 성령 충만함도 몇일 가지 못합니다. 그것이 마땅히 우리가 드릴 예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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