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8장 31-39절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로마인 이야기에 보면 초대 교회의 성장 과정에 대해서 우리가 보지 못한 시각을 제공합니다. 물론 시오노 나나미의 시각이 옳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의 눈에 기독교가 이렇게 비춰질 수 있습니다. 시오노 나나미는 기독교가 대두한 것은 로마 제국이 기독교에 양보한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기독교회가 로마 제국에 양보했기 때문이라는 가설과 함께 기독교와 로마 제국 사이에는 사람들이 쉽게 양쪽을 오고 갈 수 있었던 회색지대 같은 것이 있었다고 말을 합니다. 오히려 유대교는 수천년 동안 이어져온 전통이 있었고 율법이 있었기 때문에 절대로 로마 제국의 영향을 받지 않고 그 모습을 지킬 수 있었던 반면에 기독교는 이방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이쪽으로 올 수 있도록 회색지대를 형성했다는 것입니다. (우상숭배에 익숙한 자들을 위한 아이콘, 할례보다는 세례, 군대 인정..) 저는 이 회색지대의 형성이.. 오히려 3,4세기를 거치면서 기독교가 타락할 수 있는 밑거름을 제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천국은 회색지대가 아닙니다. 사실 타협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회색이 아닙니다. 거룩하시고, 의로우시고, 정직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합리적으로... 회색지대를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그 안에서 안주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충격적인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36절 함께 읽겠습니다.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구약 시편 44편의 말씀을 인용하여 우리는 어떤 존재인지를 바울이 상기시켜 주는데 먼저 우리는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된다고 하십니다. 그처럼 지금 주의 백성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힘들고.. 도살 당할 양 같은 처지에 있다고 말합니다.
세상은 그리스도인을 향해서 여러 방법으로 공격하는데 오늘 본문에 보면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고통을 당할 수 있습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도 당할 수 있는 고통 두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고소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33.34 절을 읽겠습니다. 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이 말은 무슨 말이죠?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이 고발 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 정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에베소지역의 변화가 나옵니다. 에베소는 아데미 신전을 만들어 바는 은 세공업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역이 복음화 되면서 사람들이 우상을 사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소 고발 당했어요. 지금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 많은 곳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이유 하나만으로 억울하게 고소 고발 당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고소당해야 한다고 말씀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나 때문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도전 받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장 23절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우리가 법적으로 고소 고발을 당하지 않더라도 여러분이 계신 곳에서 여러분의 존재가 꺼림직 해서.. 여러분을 왕따 시킬 수도 있어요. 뒤에서 수군 거릴 수도 있습니다. 손가락질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런 것입니다.
두 번째, 삶에서 실질적인 어려움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35절에 여러 가지 환란의 모습을 나열하는데 지금 한국 사회에서 우리가 적신, 칼등 직접적인 위협 보다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 때 생활 속에서..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출세하지 못하는 여러움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직하고, 투명하게 살아갈 간다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서 출세가 늦을 수 있고, 성공이 늦어질 수도 있습니다. 직장 생활 하시는 분들은 월급 받아서 원천징수 되기 때문에 세금보고 등으로부터 받는 유혹이 적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직장 안에서 간혹 유혹이 있어요. 눈 감아 주기를 바라는 상사의 눈치가 있가 있을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바울은 이러한 어려움에 대해서 이미 우리에게 주신 해결책과 정답이 있음을 알려 줍니다. 무엇보다도 고발하고 정죄하는 일에 대해서는 우리를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라고 선언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고발 당하고, 왕따 당하는 일이 있어도 두려워 하거나 무서워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 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바울은 32절에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고 반문하면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준비하시고 채우신 다는 사실을 상기 시켜 줍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어떤 것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확신이 있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회색지대를.. 없애야 합니다. 물론 살다보면 무엇이 옳은지.. 애매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냥 회색지대로 남겨두고 싶은 경우가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적용하기에 힘든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회색지대를 놔두면 회색지대는 우리 삶의 모든 부분을 잠식하고 나중에는 내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인지, 세상 사람인지 정체성을 알 수 없어 혼란에 빠지는 경우가 분명히 올 것입니다.
여러분 회색지대가 있습니까? 애매 모호한 삶의 자세가 남아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으로 확실하게 살아갈 때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두려우십니까? 하나님의 사랑에서 아무도 우리를 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이미 확정된 일입니다. 그 사랑을 인정한다면 회색지대를 끌어 안으시고 완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지경을 넓이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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