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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30일



로마서 2장 17-29절


17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18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

19 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20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21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22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23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24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25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26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27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

28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오늘 본문에 보면 사도 바울은 그 당시 사도 바울이 속한 사회에서는 주류를 이루고 있었던 유대교를 비판합니다. 그 당시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있었던 유대교는 타락의 길을 걷고 있었는데 바울은 세가지를 지적합니다.

첫째는 그들은 교만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믿었다고 말합니다. 스스로 믿었다는 것은 자기 성찰이나 자기 반성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본문 20절에 스스로 믿으니 라는 말은 사실 헬라어 원문에는 19절 처음에 나오는 단어입니다. 즉, 어린아이의 스승으로만 스스로 믿은 것이 아니라 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긍심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자기 성찰 없는 자긍심은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막아 버리고, 스스로 의롭다고 믿기 시작할 때 겉잡을 수 없는 타락으로 이어집니다. 유대인들이 이렇게 스스로 믿는 이유에 대해서 17, 18절에 4가지 이유를 말합니다. 그들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고,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칭찬 받을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스스로 믿을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율법을 의지하고 율법의 교훈을 제대로 받았다고 한다면 스스로 믿는 교만한 삶을 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유대인들은 서로를 보면서 서로 그렇게 생각 하는 문화였던 것 같습니다.

둘째로 지적한 것은 책임감 없는 행동입니다. 유대인들은 남에게는 율법 준수를 강요하면서 그들 자신은 율법의 근본 뜻을 저버리고, 위선을 행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했습니다. 21절부터 그들이 행한 잘못된 이들을 나열합니다. "21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22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23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에 대해서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밖은 결정적인 이유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것. 하나님과 나는 하나라고 한 것. 즉 신성을 모독했다는 죄목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모욕했다고 하던 유대인들은 말로는 하나님을 모독한 적은 없을 수 있으나 그들의 삶은 그들의 행동은 하나님을 모독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유대인들은 잘못된 교리를 전파하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교회 안에 전파하고 있었던 잘못된 교리는 할례에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할례는 이 당시 유대인들 만이 가지고 있었던 종교적인 의식이었습니다. 남자들이 난지 8일만에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는 것으로 다른 이방 민족과는 다른 사람임을 평생 간직하는 것이 할례입니다. 할례는 자신의 믿음과는 상관 없이 태어나면서 다른 민족과 구별되는 의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상당히 할례에 대해서 자부심이 있었고, 하나님의 선택 받은 백성이라는 확신을 가지며 살고 있었습니다. 할례 자체는 유대인들에게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의미도 있었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간직하는 의미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할례자체가 우상화 되어져 버렸습니다. 유대인들은 할례를 행함으로 하나님이 받아주실 조건이 완성되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사람들을 쫓아 다니며 할례를 강조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라고 강력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할례파와 같은 잘못된 교리를 주장하는 경우는 많이 없습니다. 방언을 해야 구원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침례를 받아야 진짜 구원 받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과거에 유대인들이 율법주의로 교회를 흔들고 있었는데 요즘에도 교회 안에 율법주의자들이 교회를 흔들고 있었습니다. 저는 우리 모두 율법주의자들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이룬 신앙의 모습으로 스스로 교만해 질 수 있고, 알게 모르게 지은 죄들로 인하여 하나님을 욕되게 함으로 무책임한 행동을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은혜 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는 순간 우리는 율법 주의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여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쁨이 충만한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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