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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17일




마태복음 21장 33-46절


33 다른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거기에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34 열매 거둘 때가 가까우매 그 열매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35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거늘

36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많이 보내니 그들에게도 그렇게 하였는지라

37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이르되 그들이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38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산을 차지하자 하고

39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40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41 그들이 말하되 그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

4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44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

45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46 잡고자 하나 무리를 무서워하니 이는 그들이 예수를 선지자로 앎이었더라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하신 세개의 연속된 비유 가운데 두번째 비유입니다. 예수님은 앞선 비유처럼 포도원을 소유한 포도원 주인에 대한 비유를 하시는데 이번에는 거기서 나는 열매, 거기서 일하는 일꾼들을 등장 인물로 사용하십니다. 그리고 이 비유에 등장하는 용어들은 이사야 5장 1-7절의 ‘포도원 노래'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유대인들이 이 비유를 들었을 때 구약의 내용을 바로 떠올렸을 것입니다.

이사야의 포도원 노래에서 여호와는 ‘나의 사랑하는 자'이며, 포도원은 이스라엘입니다. 비록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이 자신을 섬기고 선한 영적 열매를 맺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셨음에도 이스라엘은 나쁜 열매만 맺으며 자기 길로만 갔습니다. 이사야의 포도원 노래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상대로 하는 재판을 통해 온 세상에 증거를 밝히고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 누가 옳으며 누가 벌을 받아 마땅한지 결론을 내리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이 비유는 그들로 하여금 다시 한번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본문 내용은 이렇습니다. 열매를 거둘 때가 되어 소작인들은 주인에게 미리 계약한 소작료를 지불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말세 뿐 아니라 평소에도 자기 직무 시간에 관해 하나님 앞에 감당해야 할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책임을 나타냅니다. 주인은 소작료를 거두기 위해 자기를 대신하여 자기 종들을 보냅니다. 그러나 소작인들은 계약을 지키지 못하고 소작료 내기를 거부합니다. 뿐만 아니라 주인이 보낸 자들을 함부로 대합니다. 이는 주인을 함부로 대한 것과 동일한 일입니다. 그 종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보낸 선지자들을 나타내며 그들의 임무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자신의 불순종을 책임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주인이 보낸 사자를 때리고 죽이며 돌로 친 것은 이스라엘이 지난 날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 그리고 예수님 자신을 거부한 것을 나타냅니다. 주인은 반복해서 더 많은 종들을 보냈지만 그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소작인들은 주인이 계속해서 자신들에게 마땅히 행할 일들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반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러자 주인은 마지막으로 자기 아들을 보냅니다. 사실 이 시점에서 주인은 종들을 소환하여 벌을 내려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주인이 보여준 이 행동은 그 소작인들을 향한 주인의 인내심과 자비심이 얼마나 큰지 알수 있는 잣대가 됩니다. 하지만 그들은 주인의 아들마저 죽이며 자신들이 아들의 유산을 차지할 수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심판입니다. 예수님의 이 비유는 그들에게 이사야서의 포도원 노래를 생각나게 하며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제공합니다. 그들은 이 비유가 자신들을 향한 이야기 임을 알고 예수님을 잡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의 오늘 비유는 예수님을 잡으려 하는 종교지도자들에게는 치명적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쥐고 있는 경제적, 정치적, 종교적 이익과 권리를 놓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인정하는 순간 그들은 사라져야 할 존재들이기 때문이죠. 아들을 인정하는 순간 그들은 그가 내리는 처벌을 받아야 했기에 죽였던 포도원 일꾼들처럼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 한 것입니다.

우리는 당연히 이런 종교 지도자들과 다르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은근히 닮은 면이 있습니다. 내 삶의 일부에는 예수님이 들어오기를 원치 않습니다. 절대로 보여주지 않으려 합니다. 그 부분 만큼은 내가 끝까지 주인 되고 싶어 합니다. 예수님이 살짝 문이라도 열라치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문을 닿고 예수님을 문전 박대 합니다. 혹시.. 우리 안에 그런 모습 없습니까? 내 자신을 돌아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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