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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13일



마태복음 20장 17-34절

17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 때에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시고 길에서 이르시되

18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19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20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23 이르시되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24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29 그들이 여리고에서 떠나 갈 때에 큰 무리가 예수를 따르더라

30 맹인 두 사람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31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

32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들을 불러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3 이르되 주여 우리의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34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그들이 예수를 따르니라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며 제자들에게 다시 한번 앞으로 당하실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해서 다시 한번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이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 마주하게 될 현실에 대해 제자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전혀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메시아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메시아와 큰 격차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메시아는 죽음으로서 세상을 구원하는데 반해 제자들이 원하는 메시아는 권력을 쟁취함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왕을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기대는 제자들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동일하게 갖고 있었는데 본문에 등장하는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등장해 절하며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해달라는 청탁으로 이어집니다. 세배데의 아내가 예수 앞에서 무릎을 꿇은 것은 예수님에 대한 경의를 보여주고 있지만, 한편으로 예수님과 세상적인 친족의 혜택 (세배데의 아내는 예수의 이모인 살로메로 알려져 있습니다.) 을 행사하려 나온 것입니다. 이런 욕구는 어머니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들들이 함께 나와 그들의 욕구라는 것을 알려 주십니다.

호의를 요청하는 어머니의 요구는 직설적입니다. 양쪽 자리에 앉혀 달라는 것입니다. 이 요청은 예수님이 앞으로 영광스러운 보좌에 앉아 있을 때, 열두 제자들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는 열두 보좌에 앉게 될 것이라는 19장 28절에서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자극을 얻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장차 있을 나라에 취임하실 때, 그 어머니는 가장 높은 중요한 자기를 자기 아들들이 차지하기를 바란 것입니다.

이러한 바람에 대해 예수님은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선포하십니다. 그들은 앞에 높여 있는 것에 대한 희미한 개념만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며 질문 하십니다. 그들은 “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하는데 이는 그들이 여전히 예수님의 말씀을 오해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종말론적인 나라를 세우는 전쟁에 놓여있는 이 어려움을 인내할 수 있는지를 묻고 계시지만, 제자들은 그들 앞에 놓여 있는 영광에 대한 보상으로 어떤 고난도 참아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답답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앞으로 그들이 경험할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과 다른 모습이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임의로 주관하고 권세를 부리지만, 그들은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섬기는 자는 “디아코노스"라는 단어로 집사의 의미를 가지며 주인의 가정과 재산을 유지하는 일을 위해 고용된 사람입니다. 그리고 “종” (둘로스)은 노예로 주인에게 헌신 봉사하는 사람들입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섬기는 자"와 “종"은 사회에서 가장 낮은 직급에 속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서는 이렇게 섬기는 자와 종이 크고 으뜸될 것인데 그 이유는 예수님이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오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신앙의 힘으로 세상적인 성공을 이루고 싶은 욕구도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이같은 기복적인 신앙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성공을 이루게 하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성공을 목적으로 예수님을 수단화 하려 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타락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 목적과 수단을 제대로 자리 매김 하지 않으면 스스로 주인되어 예수님을 수단화 하기 때문에 타락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은 함께 ‘내가 주인 삼은 모든 것" 찬양 드리며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다시 한번 고백하고 하루를 시작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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