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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10일





마태복음 19장 1-12절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갈릴리를 떠나 요단 강 건너 유대 지경에 이르시니

2 큰 무리가 따르거늘 예수께서 거기서 그들의 병을 고치시더라

3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이르되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5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6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7 여짜오되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하였나이까

8 예수께서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10 제자들이 이르되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 들지 않는 것이 좋겠나이다

11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12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예수님은 갈릴리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마지막 여정길에 올랐습니다. 예루살렘에 들어가기 전 예수님은 작은 마을에서 그들의 병을 고쳐 주십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이 이곳까지 와서 시험합니다. 그들의 시험은 점점더 거세지고 집요해집니다. 오늘 바리새인들이 시험하는 주제는 이혼과 재혼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5장 산상수훈에서 이에 대한 말씀을 하셨지만, 그 목적과 강조점이 다릅니다. 5장 31-32절에서 예수님은 5장 20절에서 말씀하신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밝히기 위해 소개한 많은 예 가운데 하나로 이 문제를 사용하셨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이혼 그 자체에 주목하게 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은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라는 질문을 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왜 이런 질문을 했는지 의도를 아셨습니다. 율법에는 여인이 율법을 범한 사유가 있으면 아내를 내 몰수 있었고, 그 때에는 이혼장을 써 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악한 인간들이 다른 여인과 결혼하고 싶을 때 온갖 이유를 만들어 이혼장을 써 주며 아내를 쫓아내는 일이 많았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기본 뜻을 말씀하십니다. 결혼은 하나님이 만드신 제도로서 남자와 여자가 서로 자신의 삶을 약속할 때 그들을 하나 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사람은 그 하나됨을 무너뜨릴 자격이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에 대해 바리새인들은 그렇다면 왜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했느냐고 질문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이혼 증서를 써주라고 한 이유는 그들이 마음이 완악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완악한 백성들은 배우자와 이혼하는 일을 계속할 것임을 알았고, 여성이 이혼의 희생양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를 말한 것입니다. 모세는 이혼을 허용한 것이지 명령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명령으로 이해하며 오히려 이혼을 당당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율법을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해석하고 적용하고 있었습니다. 율법주의적인 삶을 산다고 자부하면서 겉으로는 의로운척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맘대로 적용하고 있는 것이죠. 이것처럼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자기 맘대로 조정하기 때문이죠.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의 뜻은 명확합니다. 물론 해석과 적용이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공의와 사랑이라는 속성에 비춰 말씀을 해석하면 틀림 없음에도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나님 말씀을 끌어다 해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잘못을 범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목회자 뿐 아니라 모든 성도님들이 깨어 기도하며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기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나도 바리새인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새벽예배 열심히 나오시는 권사님, 장로님들의 입김이 쎄다고 합니다. 그분들이 기도 열심히 하니까 하나님 말씀에도 정통하고, 하나님의 뜻을 잘 분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럴 수 있지만, 그럴 수록 겸손해야 하는데, 자기 의를 들어내며 하나님의 뜻이라며 공동체 성도들의 사생활도 간섭하고 자기 편으로 만드는 신종 바리새인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늘 낮은 자세로 겸손히 주님의 뜻을 구하며 눈물로 기도하며 하루하루 주님과 동행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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